李仙玉
2019-05-16 14:50:36 출처:cri
편집:李仙玉

金坑: 황금의 마을

개관: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복건(福建)의 바다와 산 속에는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 아름다운 경치, 고유의 특색을 자랑하는 마을들이 보석처럼 산재해 있다. 

사서에 의하면 무이산(武夷山) 산 속에 위치한 황금의 마을 금갱(金坑)촌의 서계하(西溪河) 일대에 사금이 있다고 해서 서계하를 금계(金溪)라고 했으며 마을 이름도 금갱촌이라 했다. 

맑은 시냇물의 마을 양원(楊源)촌은 무이산 산자락에 위치한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의 마을이다. 맑은 시냇물이 굽이를 돌며 마을을 흘러 지나고 물가에는 검정 기와의 민가들이 줄지어 조화롭다. 

비단잉어의 마을 포원(浦源)촌은 맑은 시냇물에 비단잉어가 헤어 다니고 소박한 민풍을 자랑하며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명승지가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역사:

1600 년대의 명(明)나라 후반에 섭(聶)씨 성의 한 사업가가 금갱촌을 안고 흐르는 금계에 사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금을 들여 사금을 캐서 일약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부자가 된 섭씨는 거액을 들여 금갱촌에 자신의 호화로운 저택 "유림랑제(儒林郞第)"를 지었고 그로부터 금갱촌의 규모가 점점 확대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900년 정도의 당(唐)나라 후반에 당나라 장군이었던 하남(河南) 출신의 장근(張謹)이 복건에서 관리로 있었고 그 때 봉기군과의 격전에서 수하의 병사들이 모두 목숨을 잃자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때 분상 온 장근의 세 아들 중 장남 장세호(張世豪)가 양원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고 그때로부터 양원촌은 오늘날까지 천 년의 세월을 흘러오고 있다. 

남송(南宋) 때인 1209년 하남에 살던 정상공(鄭尙公)이 가족을 데리고 남하해 잉어계의 하류에 터를 잡고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으며 물길을 막아 잉어를 키웠다. 

그 뒤에 정상공의 손자가 오늘날의 포원촌으로 이사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로부터 정씨가문은 자자손손 산 좋고 물 맑은 포원촌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주요명소:

북쪽으로 청산을 업고 동쪽과 서쪽, 남쪽으로는 넓은 밭을 마주한 금갱촌에는 무성한 고목과 예스러운 가옥이 나란히 하고 그 사이로 새들이 날아 아늑하면서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금갱촌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예스러운 운치가 느껴진다. 좁은 거리에 깐 자갈은 오랜 세월 속에서 사람들의 발길과 비바람에 반들반들하고 거리의 양쪽에는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심지어 거리의 중앙선, 자갈의 중심에 깐 푸른 돌도 세월 속에서 날카로운 모서리가 모두 사라지고 아름다운 라인을 형성했으며 표면도 옥처럼 반들반들해졌다. 

거리 양쪽의 건물도 모두 외벽의 하단을 자갈로 쌓았고 음지의 자갈에는 푸른 이끼가 끼고 자갈과 자갈 사이에 풀이 자라 눈을 시원하게 하고 향긋한 향기를 풍긴다. 

청(淸)나라와 명(明)나라 때 축조했거나 혹은 그에 비해서도 더 일찍 축조한 이런 건물들에는 정교한 벽돌조각이 즐비하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위택(危宅)"과 "유림랑제(儒林郞第)"이다. 

300 여 년 전에 축조된 유림랑제는 건물과 조각, 그림을 한 몸에 모은 예술작품이며 123채의 건물을 거느린 대 규모 저택이다. 벽화는 생활장면이나 관료사회의 예의 등을 재현했다. 

유림랑제의 목각은 더욱 정교하고 풍부하다. 문짝과 병풍, 창틀 곳곳에 난과 연꽃, 까치와 매화나무, 양치기 총각 등 온갖 인물과 꽃나무, 동물 등을 새겼다. 

"위택"은 크기와 풍격이 비슷한 5채의 건물이 나란히 자리한 저택이다. 거리를 향한 정문 맞은 켠에는 가림벽을 세우고 정문에는 정교한 조각이 즐비하다. 

정교한 벽돌조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수면 위로 뛰어 오른 잉어 두 마리이다. 당장이라도 물 속에 다시 들어갈 듯 생동하게 새겨진 잉어는 벼슬길에 오름을 뜻하기도 한다. 

위탁의 뒷문에는 푸른 벽돌로 쌓은 우물이 하나 있는데 벽돌에는 푸른 이끼가 가득 자라 흘러간 긴 세월을 말해준다. 벽돌로 둥글게 쌓은 우물 벽에는 힘있는 필치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금갱인들은 정원에 배나무와 대추나무, 복숭아나무 등 유실수를 즐겨 심어 봄이면 온갖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울긋불긋한 나비가 날아들어 고건물에 수려함을 더해준다. 

마을의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마을을 벗어나면 6개의 큰 돌로 교각을 쌓고 바닥에도 큰 돌을 깐 30m 길이의 풍우교(風雨橋)가 보인다. 난간과 기둥, 대들보, 날아갈듯한 처마는 모두 정교한 조각이 즐비한 나무로 되어 있다. 

금갱촌의 촌민들은 금광석을 통해 소득을 창출한 외에도 마을이 강서(江西)와 복건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 원인으로 금갱촌은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었다. 

금갱촌의 촌민들은 수로를 통해 종이와 목재, 대나무를 하류의 도시로 수송하면서 마을의 번성을 이룩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왕조의 교체에 따라 마을은 점점 몰락의 길로 나아가 금갱촌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졌고 오히려 그로 인해 옛 마을이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산악 지대에 위치하면서도 적지 않은 부를 축적한 원인으로 금갱촌은 마을을 건설할 때 방어기능을 추가했고 부를 감추어 산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문루를 호화롭게 만들지 않았다. 

아름다운 양원촌에는 120채의 완전한 고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의 고건물은 다수가 청나라 후반과 중화민국(中華民國) 초반에 지은 것으로 백 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복건성 동부의 풍격을 띤 양원촌의 건물은 흙으로 쌓은 외벽에 검정 기와를 얹었으며 문과 기둥, 대들보는 나무로 되어 있다. 조화로운 비례와 정교한 구조를 자랑하는 건물은 독특한 지방특색을 보여준다. 

낙령교(落嶺橋)는 명나라 때인 1595년에 신축했고 현재의 축조물은 청나라 때인 1884년에 개축한 것이다. 지붕과 외벽이 있는 이 다리에는 채광기능을 위해 다양한 모양의 창을 냈다. 

맑은 시냇물 위에 가로 놓인 예스러운 낙령교의 곁에는 양원촌의 장(張)씨 촌민들이 이 곳에 터를 잡은 장근(張謹)에게 제사를 지내는 영절묘(永節廟)가 있다. 

북송(北宋) 연간에 신축한 영절묘의 현재 건물은 청나라 때인 1662년에 개축했다. 영절묘의 명물은 연극의 신이 그려진 귀중한 벽화가 보존된 무대건물이다. 

해마다 음력으로 2월 9일과 8월 6일이 되면 양원촌 촌민들은 새신 의식의 일종인 유신(遊神) 의식을 가진다. 그 때면 사람들은 신상(神像)을 모시고 징과 북을 울리며 고대의 병기를 메고 나오기도 한다. 

자운산(紫雲山)서 발원한 잉어계는 수십 갈래의 샘물을 받으면서 산봉을 날아 내리고 산 굽이를 돌면서 한 걸음에 포원촌 동구 밖까지 흘러와 꼬불꼬불 돌면서 천천히 마을을 흘러 지난다. 

길지도 넓지도 않는 이 구간의 물길에 칠색의 비단잉어가 모여와 먹이를 찾으며 마을에 운치를 더해준다. 재미 있는 것은 하류의 비단잉어들도 이 마을에 매료되었는지 물길을 거슬러 올라온다. 

이 곳의 잉어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그 소리를 듣고 모여오고 먹이를 뿌려주면 너도 나토 먹이를 다투며 맑은 물속에서 채색의 비늘을 날려 마치 신비로운 스토리를 말해주는 듯 하다. 

비단잉어가 자연과 촌민들과 조화롭게 상생하는 경관으로 인해 명나라와 청나라 때부터 현지 정부는 정책적으로 비단잉어를 보호했고 촌민들은 더욱 비단잉어를 가족처럼 아낀다. 

포원촌의 촌민들은 심지어 다른 곳의 사람들이 잉어를 팔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그 잉어를 사서 물속에 놓아주며 타지에 나가서도 잉어 요리를 먹지 않을 정도이다. 

현재 포원촌의 잉어계에는 7,8천 마리의 잉어가 서식해서 칠색의 잉어들이 맑은 물속에서 채색의 꼬리를 흔들며 여유롭고 우아하게 헤엄치며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한다. 

포원촌의 촌민들은 마을에 잉어 무덤을 만들어서 자연사한 잉어를 묻는다. 잉어계의 기슭에 아름드리 고목 두 그루가 나란히 자라는데 현지인들은 "원앙수(鴛鴦樹)"라 부른다. 

두 소나무 사이의 비석에 "어총(魚冢)"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뒤에 솟은 봉분이 바로 중국에서 유일한 잉어무덤이다. 포원촌에서는 잉어가 죽으면 마을의 어른이 제문을 읽고 잉어를 무덤에 묻는다. 이 무덤에는 지난 800 여 년 동안 수많은 잉어가 묻혀 있다. 

포원촌에서 잉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풍속은 현재까지 800 여 년을 지속되어 온다. 해마다 음력으로 3월 3일이 되면 마을에서는 대 규모 제사의식을 가져 현재 잉어문화는 포원촌 고유의 문화로 부상했다. 

현재 포원촌에서는 잉어계와 잉어를 보호하고 잉어문화를 계속 발전시키는 동시에 마을 주변에서 생태농업을 발전시키고 자연환경도 잘 보호해서 청산녹수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포원촌에서는 중국의 동부 지역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사당의 하나인 정씨종사(鄭氏宗祠)도 명물이다. 800 여 년 전의 송나라 때 지은 정씨종사는 건물의 앞 부분이 좁고 뒤로 들어가면서 점점 넓어져 모양이 고대의 선박과도 흡사하다. 

세 겹의 뜰을 거느린 정씨종사는 전각이 웅장하고 대들보와 기둥에 정교한 조각과 그림이 화려하다. 사당 건물의 정문과 전각에는 모두 과거의 명인들이 쓴 편액들이 걸려 무게를 더해준다. 

황혼이 되면 부드러운 석양 아래서 잉어계는 은빛으로 빛나고 목조건물들도 황금색의 옷을 입은 듯 하며 마을 밖 논밭의 벼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푸른 파도를 형성한다. 

이른 아침 보슬비가 내리면 고요한 포원촌은 아름다운 수묵화를 방불케 한다. 연못가의 고택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소리 없이 피어 오르고 보슬비도 소리 없이 바닥을 적셔 준다. 

연못기슭의 정자에 앉으면 도롱이를 걸친 농부가 마을을 나가고 가게들도 하나 둘씩 문을 열며 떼를 지은 참새들이 지저귀며 그 사이를 날아 고요한 마을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는다. 

키워드: 

역사인문, 민가, 민속, 풍경

위치와 교통: 

금갱촌은 복건(福建, Fujian)성 소무(邵武, Shaowu)시 금갱(金坑, Jinkeng)향에 위치, 열차를 이용해 소무시에 도착한 다음 금갱촌행 버스를 이용, 2시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

양원촌은 복건성 남평(南平, Nanping)시 정화(政和, Zhenghe)현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정화에 도착한 다음 양원촌행 버스를 이용, 1시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 

포원촌은 복건성 녕덕(寧德, Ningde)시 주녕(周寧, Zhouning)현, 복건성 성도 복주(福州, Fuzhou)에서 230km 거리에 위치, 복주시 버스 터미널에서 주녕행 버스를 이용, 소요 시간은 4-5시간이다. 

계절: 

1년 4계절

설명: 

금갱촌과 양원촌 포원촌의 주변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고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원초적인 자연이 아름답고 폭포와 아늑한 계곡이 으뜸인 "계원(溪源)"협곡이다. 

계원협곡은 맑고 아늑하며 수려하고 신기하며 기이하고 험준하며 원초적인 특징을 다 갖춘다. 계곡의 바닥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며 사이사이에 보기만 해도 시원한 폭포를 형성한다. 

계곡의 양쪽에는 사자바위 등 다양한 모양의 바위산이 높이 솟아 있고 바위산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대나무와 은행나무, 덩굴나무 등 온갖 나무가 울창한 숲을 형성하며 그 사이로 산짐승들이 서식한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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