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19-01-28 11:36:55 출처:cri
편집:李仙玉

종상: 明 황제의 무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09143544440

(사진설명: 아름다운 종상)

개관: 

6 천 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초(楚)문화 발상지의 하나인 종상(鍾祥)에는 유구한 역사와 눈부신 문화를 자랑하는 문화명소도 있고 아름다운 경치를 뽐내는 자연명소도 많아서 “대지의 박물관”이라 불린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명나라 황제의 무덤 명현릉(明顯陵)은 가장 완전한 유물과 짙은 종교적 색채, 고상한 도교의 흔적 등으로 중국의 수 천년 역사에서 가장 특색이 있는 황제의 무덤으로 인정된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69273086306

(사진설명: 멀리서 본 종상)

역사:

종상은 기원전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교영(郊郢)이라 불렀고 초나라 국도였다. 1531년 이 곳에서 태어난 명나라 황제 가정(嘉靖)제가 풍수가 좋은 상서로운 곳이라는 의미의 “상서소종(祥瑞所鍾)”에서 의미를 취해 종상이라 개명해서 오늘날까지 이른다. 

명현릉은 1519년에 건설을 시작해 47년 만인 1566년에 완공했다. 1519년 국도를 오늘날의 남경(南京)에 둔 명나라 황제 헌종(憲宗)제의 4남 주우원(朱祐杬)이 별세하자 무종(武宗)제는 시호를 헌(獻)이라 하고 친왕의 규제에 따라 무덤을 건설했다. 

1521년 오늘날의 베이징에서 주우원의 아들 세종(世宗)제가 황제로 즉위한 후 부친 주우원을 황제로 칭하고 1523년부터 기존의 친왕 무덤을 황제의 무덤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09143543936

(사진설명: 현릉의 축조물)

1524년 무덤의 명칭을 현릉으로 개명, 1538년 세종제의 모친이 별세한 후 세종제는 베이징 근처의 황릉에 모친의 무덤을 만들고 현릉도 베이징에 옮겨오고자 했다. 

1539년 세종제는 풍수학적으로 부친의 무덤과 베이징의 황릉을 대조해보고 모친을 베이징의 황릉이 아닌 부친의 현릉에 합장하고 황릉 확장공사를 계속했다. 

그 뒤에도 확장공사는 계속 되어 1559년에야 공사를 마감했으며 1566년 능은전(裬恩殿) 보수공사를 마감으로 현릉의 모든 공사가 진정으로 마감되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60683154031

(사진설명: 아름다운 현릉)

주요명소:

종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명소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현릉이다. 현릉은 명나라 황제 무덤에서 면적이 가장 크고 배치와 건축기법이 가장 독특하며 릉 하나에 묘실 두 개를 거느린 유일한 황릉이다. 

현릉은 사면에 산이 둘러서서 “앞에 주작(朱雀)이 있고 뒤에 현무(玄武), 왼쪽에 청룡(靑龍), 오른쪽에 백호(白虎)가 있는” 풍수학적 구도를 가지며 황릉이 산수와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황릉의 건물은 모두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돌로 된 수미단 위에 축조되어 있고 문틀은 한백옥(漢白玉)으로 되어 있으며 모든 한백옥에 용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69273086276

(사진설명: 멀리서 본 현릉)

사면에 산이 둘러선 가운데 둘레 3.438m, 길이 1.656m의 황릉에 벽돌을 쌓아 만든 두 개의 문이 있고 신홍문(新紅門) 앞에는 양쪽에 하마비(下馬碑)가 하나씩 세워져 있다. 

외라성에 위치한 신홍문은 현릉의 입구에 도착했음을 표시하고 현릉이 왕릉으로부터 황릉으로 된 중요한 표지이기도 하다. 신홍문과 비교해 구홍문은 기존 왕릉의 입구이다. 

신홍문에 들어서면 바닥에 돌을 깐 신도(神道)가 구홍문(舊紅門)과 어교(御橋)를 경유해 내성(內城)까지 잇닿아 있다. 290m길이의 신도는 좌우가 대칭되는 곧은 통로가 아니라 용의 모양으로 구불구불 뻗어 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09143544521

(사진설명: 현릉의 신도)

신도의 양쪽에는 사자와 낙타, 코끼리, 기린, 말, 문신, 무신 석상들이 줄지어 있으며 신도의 중앙에는 웅장한 건물의 성덕비정(聖德碑亭)을 세웠다. 

하얀 한백옥으로 수미단의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이중으로 된 맞배지붕을 올린 정방형 건물을 축조했다. 비정은 사면에 아치형의 문을 두고 건물 중앙에 글자 없는 비석 무자비(無字碑)를 세웠다. 

성덕비정의 뒤에 어교가 있고 어교를 지나면 12m 높이에 육각형의 하얀 돌기둥이 솟아 있다. 망주(望柱)라고 하는 이 기둥의 상단에는 하얀 구름과 용이 조각되어 운치를 돋운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26323415295

(사진설명: 현릉의 토성)

내성의 정문은 릉은문(裬恩門)이고 그 뒤에 릉은전이 있으나 현재는 터만 남고 건물은 없다. 릉은문 양쪽의 유리꽃과 쌍룡벽(雙龍壁)은 그대로 남아서 현릉의 규모를 잘 보여준다. 

현릉의 두 토성(茔城)은 가운데 요대(瑤臺)로 연결되며 두 겹의 성에 둘러싸여 있어서 위에서 보면 아령을 방불케 한다. 바깥쪽의 성은 높이가 5m 이고 안쪽의 성은 5.5m 높이를 자랑한다. 

토성은 돌을 쌓아 축조한 네모난 성대(城臺)와 그 위에 세운 명루(明樓)로 구성되어 있다. 성대의 하단에는 아치형의 문이 나 있어서 그 문을 지나면 명루에 오를 수 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69273086325

(사진설명: 현릉의 건물)

명루에는 “공예헌황제지릉(恭睿獻皇帝之陵)”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양쪽에는 헌황제를 위한 묘지명이 새겨져 있고 앞에는 석각과 돌기둥이 조화를 이룬다. 

명나라 황제 무덤에서 보성(寶城)이라고도 하는 토성 두 개를 둔 황릉은 현릉이 유일하다. 현릉에 두 개의 토성을 두게 된 것은 이 황릉 주인신분의 변화 때문이다. 

앞쪽의 토성은 1520년 주우원이 타계한 당시 친왕의 규제에 의해 축조한 것이다. 1538년 주우원의 아들 세종제는 자신의 모친이 별세하자 부친과 합장하려고 직접 현릉을 찾았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69273086440

(사진설명: 현릉의 일각)

부친의 토성을 열자 내부에 물이 차서 세종제는 부친의 토성 옆에 새로운 토성을 축조하고 모친을 묻고 부친과 모친의 두 토성을 요대로 연결시켰다. 

현릉의 토성은 각자 월아성(月牙城)과 가림벽을 거느리며 독자적인 배수시설도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명나라 황릉 중 현릉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현릉의 외라성(外羅城)은 1539년에 축조했다. 신홍문에서 시작된 외라성은 기복을 이룬 산발을 따라 조성되어 웅장하기 그지없다. 붉은 담은 둘레가 3.489m에 달하고 높이는 5m, 두께는 1.6m이며 위에 노란색의 유리기와를 얹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501259126323415631

(사진설명: 현릉의 성)

외라성은 양쪽이 좁고 가운데가 넓은 병 모양의 성이고 내(內)라성은 앞쪽이 모나고 뒤쪽이 둥글게 축조한 성이다. 내라성에는 황릉의 주요 건물들인 릉운문과 릉은전, 릉침문(陵寢門), 이주문(二柱門), 명루(明樓), 두 토성 등 건물들이 위치해 있다. 

현릉은 또 풍수학적으로 내(內), 외(外) 명당(明塘)을 팠다. 1539년에 조성한 외명당은 신홍문의 서쪽에 위치해 있고 외라성과 연결되며 길이가 120m, 너비 98m의 타원형 모양이며 릉운문 앞에 조성된 내명당은 아담한 연못이다. 

그밖에 종상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다. 지금으로부터 1100 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봉탑(文峰塔)이 그 중 하나다. 하얀 문봉탑은 거꾸로 놓은 주발 같고 지하에 불상과 사리가 소장되어 무게를 더해준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441324816208620289

(사진설명: 종상의 원우궁)

건축물이 웅장한 원우궁(元佑宮)은 명나라 때인 1540년에 조성한 고건물의 군락이다. 원우궁은 황제가 고향에 돌아올 때 혹은 황실 혹은 관료들이 현릉을 참배할 때 거쳐가는 곳이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원우궁은 건축풍격이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과 유사하고 무당산(武當山)의 도관(道觀)과도 비슷하다. 종상의 유구한 역사를 보려면 석패고진(石牌古鎭)을 선택한다. 

2000 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석패고진은 거리와 골목이 얼기설기하고 그 사이에 고건물들이 즐비한 명나라와 청나라 때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해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 착각하게 된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416969010136957173

(사진설명: 종상의 패방)

2km 길이의 황선동(黃仙洞)은 기복을 이룬 동굴이 구불구불 신비롭게 뻗어 있고 동굴에 기이한 바위들의 숲 석림(石林)경관이 펼쳐져 있는 세계 급의 명소이다. 

카르스트 동굴인 황선동에는 붉고 노랗고 갈색이 나며 혹은 하얀 돌 화살과 석순, 돌 기둥, 석탑, 돌 폭포 등 온갖 색채와 온갖 모양의 종유석이 즐비해 눈을 어지럽힌다. 

종상에서는 그 밖에 춘추전국시기 초나라 가희(歌姬) 막수(莫愁)의 이름으로 명명한 막수호도 명물이다. 맑은 물의 호수에서는 물고기와 연근 등 온갖 먹거리가 많이 나기도 한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416969345144417398

(사진설명: 아름다운 종상)

키워드: 

역사인문, 풍경, 고건물

위치와 교통: 

종상은 호북(湖北, Hubei)성 중부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호북성 성도 무한(武漢, Wuhan)에 도착한 다음 종상행 버스를 이용, 4시간이면 종상에 도착하고 종상에서는 시내 버스로 각 명소로 이동한다. 

그 밖에 열차를 이용해도 편리하게 종상을 오갈 수 있다. 현재 무한은 물론이고 베이징과 상해(上海), 광주(廣州), 항주(杭州), 중경(重慶), 성도(成都), 양양(襄陽), 형문(荊門), 의창(宜昌) 등 도시들에서 열차를 이용해 편리하게 종상에 도착할 수 있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416969259245048105

(사진설명: 아름다운 종상)

계절: 

봄과 가을, 겨울

설명: 

종상은 장수문화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470년에 장수현(萇壽縣)이라 했고 551년에 장수현(長壽縣)으로 개명했다. 그것은 종상에서 경제적 가치와 식용가치, 약용가치가 높으며 건강과 장수에 좋은 장초(萇楚)라는 식물이 나기 때문이다. 

백 세 이상의 노인이 많은 종상은 2008년 “중국 장수의 고장”이라고 명명되었고 2015년 유엔 고령연구소와 세계 고령화 전문가 위원회로부터 “세계 장수의 고장”에 선정되었다. 

종상은 고유의 장수문화를 형성해 종상 곳곳에서 다양한 장수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종상에는 장수(長壽) 두 글자를 사용하는 지명과 장수와 연관된 지명이 아주 많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416968434611358592

(사진설명: 종상의 마을)

장수마을, 장수하, 만수암(萬壽岩), 백세교(百歲橋) 등 지명에는 또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어서 종상의 장수문화를 대변한다. 예를 들어 백세교는 명나라 때 마을에 마음이 착하고 예절에 밝으며 지혜로운 할머니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105세까지 장수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다리를 축조하고 백세교라 했다. 

종상에서는 재배하는 식물과 기르는 동물도 장수와 연관된다. 사람들은 집에 장수를 뜻하는 송학도(松鶴圖)를 걸기 좋아하고 장수하는 동물인 거북이를 많이 키우며 집의 앞과 뒤에 소나무와 대나무, 복숭아 나무를 많이 심는다. 

종상인들은 역대로 장수하는 노인을 위해 축하하는 예의를 형성했다. 축수(祝壽)에 앞서 노인의 자손들이 선물로 받은 편액과 주련, 그림 등을 방안에 걸고 음식을 준비하며 노인의 생일날이 되면 가족 모두가 덕담을 하면서 생신을 축하한다. 

축수가 끝나면 장수잔치가 벌어지며 잔치에 앞서 내빈 축사가 있고 주인이 답사를 하며 그 다음에 모두가 장수노인과 함께 즐겁게 환담하며 음식을 먹는다. 

图片默认标题_fororder_416940259617424016

(사진설명: 아름다운 현릉)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공유하기:

댓글달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