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19-04-10 10:46:55 출처:cri
편집:李仙玉

개봉: 8 왕조의 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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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개봉)

개관: 

개봉은 5대 중국 고도의 하나로 여덟 개의 고대 중국의 왕조가 개봉(開封)에 도읍을 두었다.  일찍 북송(北宋) 때에 전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그 때 당시 세계적으로도 가장 번화한 “국제화 도시’였다. 

4100 여 년의 도시역사를 보유한 개봉은 위로 한(漢)나라와 당(唐)나라를 이어받고 아래로 명(明)나라와 청(淸)나라에 심원한 영향을 준 송(宋)문화를 형성하며 오늘날 풍부한 문화재와 유구한 역사의 도시구도, 오랜 고성(古城), 북방 물의 경관 등 4대 특징을 보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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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개봉의 일각)

역사:

일찍 5,6천 년 전의 신석기 시대에 개봉에는 인간이 살았고 기원전 2070년-1600년의 하(夏)나라 때에 개봉은 217년동안 도읍이 되어 개봉의 도읍역사를 시작했다. 

기원전 1600년-1046년의 상(商)나라 때 27년간 개봉에 도읍을 정했고 기원전 369년에 즉위한 춘추전국(春秋戰國)시기 위(魏)나라 혜왕(惠王)이 개봉에 도읍을 정하고 대대적인 도시개발을 시작했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 때 개봉은 대량(大梁)현이라 했고 기원전 202년 서기 8년의 서한(西漢)때 개봉현이라 개명해 오늘날까지 온다. 

북주(北周) 때인 576년 개봉은 변주(汴州)라고도 불려 현재 개봉의 약칭은 변(汴)이다. 784년에 초(楚)나라가 국도를 개봉에 두면서 오대(五代)시기의 후량(後梁)과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가 모두 개봉에 도읍을 두고 “동도(東都)” 혹은 동경(東京)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시기 개봉은 낙양을 대체해서 전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960년 송(宋)나라가 건국되면서 168년간 북송의 국도가 된 개봉은 빠른 발전을 가져와 중국에서 최고를 자랑함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국제 도시가 되었다. 

1127년 북송이 멸망하면서 동경은 변경(汴京)이 되었고 1929년 중화민국(中華民國) 때에 개봉시를 설립했으며 1949년 3월 해방된 개봉에 하남성 인민정부가 설립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1954년 하남성의 성도가 개봉에서 정주(鄭州)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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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개봉의 고건물)

주요명소:

4100 여 년의 도시역사와 오랜 도읍역사를 보유하며 기원전의 하(夏)나라와 전국(戰國)시기의 위(魏)나라, 오대(五代)시기의 후량(後梁)과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 그리고 송(宋)나라, 금(金)나라가 국도를 정한 개봉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중심선이 한 번도 변하지 않은 도시이다. 

여러 왕조의 국도였던 개봉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황궁의 유적지 용정(龍亭)과 가장 웅장한 절 대상국사(大相國寺) 등 유적지 외에 신축한 송나라를 모방한 명소 송도어가(宋都御街), 중국에서 민간인이 조성한 비림 중 규모가 가장 큰 한원비림(翰園碑林), 송문화 테마 공원인 청명상하원(淸明上下園) 등 다양한 명소들이 개봉 곳곳에 산재해 있다. 

개봉의 남동쪽에 위치한 북송 때인 974년에 축조한 번탑(繁塔)은 개봉 지역에서 가장 일찍 세운 불탑이자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축조물이며 사각형 불탑이 팔각형으로 바뀌는 대표적인 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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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번탑의 일각)

번탑은 원래 북송의 황실 사원인 천청사(天淸寺)에 위치했다고 해서 천청사탑이라 했으며 원래는 육각형에 9층, 80m높이의 웅장한 불탑이었고 이 곳의 봄이 아름다워 “번대춘색(繁臺春色)”은 변경(汴京) 8경의 하나에 선정되었다. 

그 뒤에 세월 속에서 번탑은 원(元)나라 때 벼락으로 탑의 상단 2층이 무너지고 명(明)나라 때 이르러서는 3층만 남았다. 청(淸)나라 때 무너진 6층을 축소해서 남은 3층 위에 축조해 오늘날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형성했다. 

번탑의 하단은 한 면의 길이가 13.1m에 달하는 누각 양식을 갖춘 육각형의 3층 불탑이며 탑신은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지고 제3층의 단 위에 6.5m 높이의 작은 탑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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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번탑의 일각)

하단의 높이가 25m에 달해 번탑의 총 높이는 31.67m에 달한다. 번탑의 외벽과 내벽은 모두 불상 하나씩 새겨진 불감 격인 벽돌로 쌓아 벽돌 한 장이 불상 하나인 셈이다. 

108가지에 7,000 여 기에 달하는 불상은 자태와 복식, 표정이 서로 달라 풍부함을 자랑한다. 그 중에는 연꽃좌대에 단정하게 앉은 불도 있고 여러 가지 법기를 손에 든 불도 있으며 푸른 사자를 탄 문수(文殊)보살과 흰 코끼리를 탄 보현(普賢)보살도 보인다. 

탑 하단의 남과 북에는 아치형의 문이 조성되어 탑을 출입할 수 있으나 남쪽 문과 북쪽 문이 서로 통하지는 않는다. 남쪽 문을 통해서는 탑의 내부를 경유해 3층까지 올라 갈 수 있고 북쪽 문을 통해서는 내벽에 쌓은 계단을 통해 등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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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포공사)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청렴한 관리이고 정치개혁자인 포증(包拯)을 위해 세운 포공사(包公祠)는 금(金)나라와 원(元)나라 때 축조를 시작해 명(明)나라와 청(淸)나라 때 보수를 거쳐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대전(大殿)과 이전(二殿), 동서 곁채, 회랑, 비정(碑亭), 웅장한 문루(門樓) 등을 거느린 포공사는 구도가 엄밀하고 웅장하며 색채가 우아하고 송나라 때의 풍격을 잘 보여준다. 

대전의 중앙에 곤룡포를 입고 옥띠를 두른 포공이 등받이 의자에 소나무처럼 위엄스럽게 앉아 있는 3m 높이의 좌상이 있으며 양쪽에는 포공묘에서 출토한 그릇과 문방구 등이 전시되어 있고 내벽에는 포공의 실적을 보여주는 채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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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포공사의 건물)

포공의 석상 탁본이 있는 이전(二殿)에는 포증이 자손에게 남긴 가훈이 적혀 있어서 포공의 청렴함을 잘 보여준다. 전각 중앙에는 또 북송 때의 유물인 <개봉부제명기(開封府題名記)>가 보존되어 있다. 

이 비석에는 북송 때 개봉부의 부윤(府尹)을 맡은 183명의 성명과 부임일자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포공의 이름 하단에만 유독 깊은 홈이 패어져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이 비석에서 손가락으로 포공을 찾으면서 남긴 흔적이고 이는 포공을 아끼고 사랑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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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포공사의 내부)

동서 곁채에는 사진과 문자의 형식으로 포공이 벼루를 던진 이야기와 지혜로 이재민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준 이야기, 조왕(趙王)의 목을 벤 이야기 등 포공의 아름다운 전설과 야사, 역사 스토리를 재현한다. 

포공사의 동쪽에 위치한 염천(廉泉)은 사람에 따라서 샘물의 물맛이 달라지는 신기한 점이 있다고 전해진다. 일반인이 염천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고 청렴한 관리가 마시면 물맛이 달지만 탐관오리가 마시면 물맛이 쓰고 심한 두통이 생긴다는 전설이다. 

그 밖에 포공사에는 또 글이 없는 유명한 비석이 하나 있는데 비석이 세워진 정원의 나무들 사이로 온갖 새들이 날아 예지만 종래로 비석에 머무는 새는 한 마리도 없다고 한다. 새도 포공의 위엄에 감히 이 곳에 머물지 못한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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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개봉부)

포공이 부윤으로 있은 개봉부(開封府)는 오늘날의 경찰서에 해당한 북송 때 개봉의 행정과 사법을 담당하는 관아이다. 포공서호를 사이 두고 포공사와 마주하는 곳에 개봉부를 다시 재현했다. 

907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개봉부에는 태종(太宗)제와 진종(眞宗)제, 흠종(欽宗)제 세 명의 송나라 황제가 머물렀으며 청렴한 관리 포증 외에도 구양수(歐陽脩), 범중엄(范仲淹), 소식(蘇軾), 사마광(司馬光) 등 정치가와 사상가, 문학가, 군사가들이 부윤으로 있었다. 

높은 지붕과 정교한 채색의 그림이 웅장함과 우아함을 자랑하는 개봉부는 송나라 건축 풍격을 잘 보여준다. 부문(府門)과 의문(儀門), 본 홀, 의사(議事) 홀, 매화당(梅花堂)을 중심선으로 양쪽에 천경관(天慶觀)과 명례원(明禮院), 잠룡궁(潛龍宮), 청심루(淸心搂), 감방, 영무루(英武搂) 등 크고 작은 건물 50 여 채를 거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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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개봉부의 건물)

개봉부의 부문을 넘어 본 홀의 마당에 들어서면 청렴한 관리가 되어 백성들에게 복을 마련해야 한다는 글이 적인 거대한 바위 “계석명(戒石銘)”이 있다. 

계석명을 돌아 서면 개봉부의 장관인 부윤이 업무를 보며 행정명령을 내리고 사건을 심사하던 장소인 본 홀이 나타난다. 홀에는 또 탐관오리의 목을 베던 세 개의 작두가 재현되어 위엄을 나타낸다. 

잠룡궁은 송나라 인종(仁宗)제가 부친인 진종(眞宗)제가 개봉부 부윤을 지낸 것을 기리기 위해 축조한 건물이다. 잠룡궁 뒤의 잠룡전에는 황제가 되기 전에 개봉부 부윤을 지낸 세 황제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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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개봉부의 작두)

개봉부의 북동쪽 코너에 위치한 명례원은 북송 때 과거시험을 치르던 곳이다. 명례원의 뒤에는 과거시험에 합격된 수험생의 명단을 보관하는 건물도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영무루는 과거시험에서 무예시험을 보던 장소이며 도교를 국교(國敎)로 인정한 송나라이기 때문에 개봉부에는 도교의 장소인 천경관도 있고 개봉부 서쪽에는 죄수 차량을 망라한 송나라 때의 형벌 시설들이 있다. 

개봉은 유명한 서예와 그림, 지방극의 고장으로 이 곳에서 4대 서예의 파벌이 탄생했고 예극(豫劇)과 하남취자(河南坠子) 등 지방극이 발원했다. 개봉의 유명한 공예품으로는 자수인 변수(汴繡), 도자기, 세화, 짚세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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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개봉의 국화)

1983년부터 시작된 개봉 국화회(菊花會)는 2013년에 “중국 개봉 국화 문화 축제”로 개명되어 국화와 등불을 감상하고 관광과 경제협력을 어우르는 국가 급의 축제가 되었다. 

개봉에서는 해마다 10월 18일부터 11월 18일까지 1개월 동안 국화 축제를 개최해 1300여 종의 국화 300만 그루가 거리와 골목에 가득해 도시를 황금색의 바다로 단장한다. 

개봉의 국화 재배 역사는 천 년이 넘으며 당(唐)나라 때 벌써 규모를 형성했고 북송(北宋) 때에는 내외에 이름이 자자했으며 국화꽃등 걸기와 국화꽃 축제, 국화꽃 술 음미하기 등 행사들은 천 년의 역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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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개봉의 국화)

청(淸)나라 건륭(乾隆)제는 개봉 우왕대(禹王臺)에서 국화를 감상하고 시를 썼으며 그 시는 현재 우왕대 공원의 “건륭어비(乾隆御碑)”에 새겨져 있다. 그 밖에 많은 명인들이 개봉에서 국화를 감상했고 1983년 국화는 개봉의 시화(市花)가 되었다. 

개봉의 국화꽃 축제는 용정공원과 철탑(鐵塔)공원, 변경(汴京)공원, 우왕대공원, 청명상하원, 대상국사, 포공사(包公祠), 개봉부(開封府) 등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또한 도시 곳곳에서 풍부한 예술공연과 민속시연, 눈을 어지럽히는 서예 및 그림 그리기, 다양한 사진전, 온갖 종류의 책 시장 등 문화 행사들이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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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개봉의 국화)

키워드: 

고건물, 역사인문, 풍경, 민속

위치와 교통: 

개봉은 하남(河南, Henan)성 동부, 예동(豫東) 벌판, 황하 하류 충적평야의 남쪽에 위치, 항공편과 열차, 도로 등 다양한 교통편을 통해 편리하고 빠르게 오갈 수 있다. 

번탑과 개봉부, 포공사 등 명소, 그리고 국화축제가 개최되는 각 공원은 모두 개봉시내에 위치해 여러 갈래의 시내 버스를 이용해 각 명소를 편리하게 왕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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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개봉 국물 만두)

계절: 

9-10월

설명: 

개봉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 

1. 개봉 국물 만두

개봉의 국물 만두 관탕포(灌湯包)는 만두피가 도자기처럼 투명하게 맑고 32개의 주름이 간 만두의 모양이 하얀 국화를 방불케 하며 만두를 집으면 또 초롱 같기도 하다. 

육향이 가득한 만두소에 시원한 맛의 국물까지 있어서 기름지면서도 전혀 느끼하지 않으며 별미이다. 국물 만두를 먹을 때는 “먼저 만두의 문을 열고 국물을 마시며 그 다음 만두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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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면과 탕수어)

2. 면과 탕수어

새콤달콤한 잉어와 바삭바삭한 면발이 조화를 이루는 면과 탕수어 리어배면(鯉魚焙面)은 개봉에서 맛을 보지 않으면 평생 유감으로 남을 수 있는 음식이다. 

1900 년 청나라 광서(光緖)황제와 자희(慈禧) 태후가 8개국 연합군의 난을 피해 베이징(北京)을 떠나 개봉에 잠깐 머물던 때 탕수어를 맛 보고 크게 칭찬했다. 

1930년대에 개봉의 유명한 요리사가 기름에 튀긴 가는 면을 탕수어 위에 펴 담은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 생선과 면이 조화를 이루어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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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묵 볶음)

3. 국화전골

국화의 도시 개봉에서는 또 국화전골을 빼놓을 수 없다. 새우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하얀 국화 등을 가지고 만든 국화전골은 청나라 후반의 궁중음식으로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냄비에 생선육수와 닭고기 육수를 두고 육수가 끓으면 하얀 국화의 꽃잎을 넣는다. 그리고 새우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넣으며 육향과 국화꽃의 향기가 어우러져 별미이다. 

4. 묵 볶음

묵 볶음 초량분(炒凉粉)은 북송 때부터 전해지는 개봉의 유명한 전통스낵이다. 완두콩과 녹두 등으로 만든 묵은 색상이 영롱하게 희고 부드러우며 맛이 개운하다. 

묵에 콩장과 파, 생강, 마늘, 참기름을 넣어 볶은 개봉의 묵 볶음은 개봉의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살짝 그을린 묵이 고소하면서도 개운해 별미이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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