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19-07-11 15:42:50 출처:cri
편집:李仙玉

錢崗: 리치나무숲의 고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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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전강마을)

개관: 

광동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 적지 않다. 그 중 광동 종화(從化)시에 위치한 리치나무 숲의 고대 마을 전강(錢崗)과 풍수의 고대 마을 대강포(大江埔)가 가장 대표적이다. 

전강마을은 송(宋)나라 때부터 조성을 시작해 별다른 운치를 자랑하는 동시에 오랜 세월 속에서 마을의 구도가 상대적으로 짜이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전강 마을의 현재 건물은 다수가 명(明)나라 때 축조한 것이며 반들반들한 자갈을 깐 거리와 골목이 얼기설기 복잡하게 뻗어 있지만 전혀 어수선하지 않고 오히려 흘러간 긴 세월을 더 잘 보여준다. 

대강포마을은 풍수학적으로 한자로 “상(象)”자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 앞쪽으로 시냇물 한 줄기가 흐른다고 해서 이름이 대강포(大江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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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전강마을의 전경)

역사:

전강마을은 800 여 년 전의 송나라 때 조성되어 종화(從化)현의 설립보다도 200 여 년 앞섰다. 전강마을은 송나라와 원(元)나라, 명(明)나라, 청(淸)나라, 중화민국(中華民國) 등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예스러운 고대 마을의 모습을 유지한다. 

전강마을의 주민은 다수가 남송(南宋) 때 유명한 신하였던 육수부(陸秀夫)의 자손이다. 육수부는 원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1279년에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육씨가문의 사당인 광유사(廣裕祠)는 베이징의 고궁(故宮)과 같은 시기에 축조되어 현재까지 600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중국의 고대 마을에서 높은 문화적 가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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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전강마을의 건물)

주요명소:

전강마을의 길은 모두 꼬불꼬불해서 곧게 뻗은 길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마을에 들어가기는 쉬워도 마을을 나오기는 힘들”정도이다. 600 여 갈래의 길을 거느린 전강마을에 들어서면 울퉁불퉁한 길이 몇 백 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벽돌 한 장에까지 명나라와 청나라 때의 흔적이 스며 있다. 

전강마을에는 네 개의 문루(門樓)와 아홉 개의 서원(書院), 세 개의 사당, 네 개의 갱루(更樓)가 있으며 마을 밖으로는 마을을 지키는 해자가 흐른다. 가옥과 사당, 연못이 조화를 이루는 전강마을은 광주일대 민가의 대표로 인정된다. 

전강마을에는 동쪽의 계정문(啓廷門), 서쪽의 진화문(鎭華門), 남쪽의 진명문(震明門), 북쪽의 영룡문(迎龍門) 등 동서남북에 네 개의 문루가 있으며 마을의 외곽에는 여전히 낡은 담벽이 네 개의 문루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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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전강마을의 건물)

네 채의 문루는 모두 상하 2층으로 되어 있고 1층과 누각형식으로 된 2층은 목조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루의 외벽에는 마을의 주변을 관찰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기도 했다. 

그 중 진화문의 외벽에 난 구멍은 안쪽이 넓고 바깥쪽이 좁아서 더 쉽게 마을 주변의 상황을 살필 수 있다. 항일(抗日)전쟁 때 이 구멍을 통해 마을에 들어오는 도로를 봉쇄하기도 했다. 

네 개의 문루 중 진명문은 영남문화 중에서도 광주일대 건물의 특색을 가장 잘 살렸다. 두 겹으로 된 문루에서 첫 번째 문은 십 여 개의 굵은 침목으로 문짝을 만들고 두 번째 문은 경목으로 두 짝의 문을 만들어 방어기능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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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전강마을의 골목)

전강마을의 동쪽 문루(門樓) 앞에 솟은 삼문(三門) 패방(牌坊)을 지나면 마을에 들어선다. 청나라 때인 1891년에 축조한 이 패방은 갖은 방법으로 부친의 병환을 치료하고 자신은 과로로 사망한 마을의 한 효자를 위해 황제의 어지로 세운 효행류방(孝行流芳)패방이다. 

네 개의 기둥에 받들려 있는 이 패방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3층이며 높이는 3m에 달한다. 육각형의 돌 기둥은 돌 사자 위에 세워져 있고 패방의 상단에는 패방의 이름과 함께 성지(聖旨)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광유사에는 남송때의 승상을 지낸 육수부와 전강마을을 세운 육종흥(陸從興), 광유사의 창시자 육광평(陸廣平)의 위패가 공양되어 있다. 원나라에 대항한 육수부가 목숨을 끊은 후 송나라가 망하자 육수부의 자손들은 원나라의 추적을 피해 도처로 피난을 다녔고 육수부의 제5대 손인 육종흥이 가족을 거느리고 전강마을에 이르러 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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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전강마을의 광유사)

육종흥 후에 제6대와 제7대에 이르러 육광평 등 자손들이 마음을 모아 명나라 때인 1406년에 육씨가문의 사당인 광유사를 세웠다. 전강마을의 가옥들은 임의로 위치해 있는 듯 하지만 모든 가옥들이 광유사를 중심으로 산재해 있다. 

광유사의 대들보에는 1553년과 1639년, 1667년, 1807년, 1915년 등 다섯 번에 걸쳐 사당건물을 보수한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해서 이 사당은 중국의 사당 중 유일하게 여러 차례의 보수연대가 정확하게 기록된 사당이다. 

경치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전강마을의 주변에는 동쪽과 남쪽, 서쪽에 연못이 있고 연못의 기슭에는 여러 가지 유실수가 자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유실수는 리치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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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전강마을의 리치나무)

이 곳의 리치는 하얀 과육이 부드럽고 달디단 과즙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전강마을의 리치나무 중 여기황(荔枝皇)이라 불리는 리치나무는 2004년 “가장 큰 리치나무”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명나라 때 심은 이 나무는 수령이 460년에 달하고 줄기의 지름이 5m가 넘고 높이는 12m이상이며 수관의 직경은 33m에 달한다. 이 나무는 해마다 3월 하순부터 4월하순까지 꽃을 피우고 7월 상순부터 열매가 익는다. 

이 리치나무에는 최고로 2400킬로그람의 열매가 달려 현지 촌민들이 사흘을 뜯었으며 현재도 해마다 1000-1500킬로그람의 열매를 생산해서 리치가 익을 때면 주렁주렁 달린 탐스러운 리치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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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대강포)

원나라 후반과 명나라 초반에 조성된 대강포마을에는 2,400 명이 주거하며 마을의 면적은 1만 제곱미터에 달한다. 남쪽을 향한 마을의 앞에는 넓은 연못이 조성되어 시야가 탁 트이고 그 뒤에 사당과 민가들이 펼쳐져 바둑판을 형성한다. 

연못의 기슭, 마을의 남쪽에는 능연공사(能緣公祠)와 무여공사(武馀公祠), 회산공사(懷山公祠), 낙추공사(樂秋公祠), 거현공사(居賢公祠) 등 5개의 사당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대강포마을의 건물은 지붕이 남다르다. 지붕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맞배지붕이지만 지붕의 양쪽에 냄비 손잡이 모양의 방화벽(防火壁)이 솟아 종화 고건물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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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종화시)

키워드: 

고건물, 민가, 풍경

위치와 교통: 

전강마을과 대강포마을은 광동(廣東, Guangdong)성 종화(從化, Conghua)시 강포(江埔, Jiangpu)진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광동의 성도 광주(廣州, Guangzhou)에 도착한 다음 광주역 근처의 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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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종화시의 숲) 

계절: 

1년 4계절

설명: 

전강마을과 대강포마을이 위치한 종화는 중국에서 유명한 온천의 소도시로 “북회귀선의 보석”, “광주의 가든”이라 불린다. 종화에는 호수와 댐이 100개, 청산의 면적이 12만 헥타르, 산림조성률이 67%에 달한다. 

종화의 아름다운 산과 물 사이에는 또 별장과 정자, 사격장, 바비큐 장소, 유람선 등 식사와 숙박, 쇼핑, 오락, 외출, 관광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좋은 휴식의 한 때를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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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종화의 온천)

종화의 온천수는 아름다운 산중에서 솟아나며 특히 다른 곳의 온천에서는 볼 수 없는 온천모래욕을 체험할 수 있다. 종화에서는 임의로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파면 온천이 솟아나 모래로 조성한 자연욕조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다. 

멀리서 종화를 바라보면 뜨거운 온천물이 솟아나 가벼운 물안개가 끼고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시냇물 바닥에 모래가 반짝여 밝은 거울에 수많은 보석이 있는 듯 하다. 

종화의 천호(天湖)도 사람을 매료시킨다. 호숫가에 푸른 산봉이 기복을 이루고 산자락에는 푸른 숲이 설레며 호숫물이 만드는 폭포가 웅장한데 호수의 댐에 올라서서 저 멀리 바라보면 청산녹수가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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