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19-01-24 13:07:16 출처:cri
편집:李仙玉

어목채: 토가족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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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어목채)

개관: 

토가(土家)족의 마을 어목채(魚木寨)는 부지가 1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심산 속의 한 절벽 위에 위치해 있다. 어목채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토가족의 보루이다. 

600 여 년 전의 명(明)나라 때 조성된 이 마을은 처음에는 마(馬)씨 성을 가진 토가족의 두령 토사(土司)의 소유였으나 후에 토가족의 역대 토사와 소수민족 봉기군의 거점이 되었다. 

은시토사성(恩施土司城)에는 토가족과 묘(苗)족, 동(侗)족 세 소수민족의 전통 가옥이 집중되고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풍격이 가장 대표적이며 외관이 가장 웅장한 토가족의 고상가옥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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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멀리서 본 어목채)

역사:

토가족은 유구한 역사를 보유한 상고시대 파인(巴人)의 후손이다. 후에 초인(楚人)들에 의해 현재의 청강(淸江)일대에 이주해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에 파인 최초의 노예제 제후국인 파자국(巴子國)을 설립했다. 

파자국이 기원전 361년에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일부 파인들이 호남과 호북 일대의 산악지대에 이르러 토가족을 형성했다. 토사제도는 고대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소수민족 지역을 관리하는 제도로 소수민족의 두령을 토사로 봉하고 자치를 시행한 제도이다. 

은시의 토가족 지역의 토사제도는 원(元)나라부터 시작되어 원나라 때 29명의 토사가 책봉을 받았으며 명(明)나라 때 31명, 청(淸)나라 때 20명의 토사가 은시의 토가족을 관리했다. 

토사의 관리를 받는 토가족의 마을 어목채는 명나라 때 마을이 형성되고 청나라 때인 1799년에 어목채의 문루를 신축했으며 마을로 통하는 2m 너비의 계단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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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어목채의 문루)

주요명소:

아찔하게 높은 절벽 위에 덩그렇게 올라앉은 마을의 문루(門樓)는 아주 높지만 한 번에 겨우 한 사람밖에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좁고 험준하기 그지없다. 

도합 네 겹의 문을 두고 요소마다 초소를 세우고 담을 쌓은 어목채는 도로가 험준하고 수비가 용이하며 공격이 어려운 특징을 가진다. 마을의 북동쪽 통로인 삼양관(三陽關)에는 깎아지른 듯한 10m 높이의 낭떠러지에 30개의 계단을 만들어 조성한 구간이 있다. 

과거 마을 사람들은 빈 몸으로 마을을 출입할 때 이 길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가마를 메고 다닐 때에도 아슬아슬하게 이 곳을 경유해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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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어목채의 건물)

지세가 험준하고 외부와 거의 단절된 원인으로 어목채의 문화재와 명소, 민족풍속은 현재까지도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마을에는 청(淸)나라 때 축조한 건물 1채와 고대의 무덤 30여 기, 정교한 기법의 조각이 즐비한 다수의 비석이 남아 있다. 

마을을 오고 가는 길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게 험준하고 성곽과 “육길당(六吉堂)” 등 유적은 소박하면서도 우아하다. 그밖에 마을에는 베틀이 남아 있는 천 짜던 동굴과 기름을 짜던 동굴, 돈을 주조하던 동굴, 군사가 묵던 동굴, 총을 만들던 동굴 등 다수의 유적이 남아 있다. 

어목채에 들어서면 모든 건물들이 청석으로 축조되어 있고 마을 곳곳에 붉은 글자가 산뜻하게 새겨지거나 생동한 그림이 정교하게 조각된 크고 작은 비석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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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어목채의 일각)

청석에 새겨진 석각은 모양이 다채롭고 무늬가 다양하며 내용이 풍부하고 인물이 살아 있는 듯, 꽃에서 향기가 나는 듯 조각기법이 기묘하기 그지없다. 

건물도 돌이고 바닥에도 돌을 깐 어목채에는 항아리를 망라해 모든 생산 및 생활도구도 돌로 되어 있으며 촌민들은 현지에서 나는 청석(靑石)을 석보(石寶), 돌보배라 부르며 즐겨 사용한다. 

백 가구에 달하는 어목채의 촌민은 대부분이 토가족이며 관혼상제와 음식, 건축 등에서 모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고유의 특징을 보유한 풍토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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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토사성의 문루)

토사성의 입구에는 토가족 전통 양식의 문루가 세워져 있고 문루의 앞 양쪽에는 신인(神人)이 용을 이끄는 “천왕송자(天王送子)’ 조각상이 있으며 오른쪽 벽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4층의 문루는 높이가 25m이고 너비는 12m이며 못 하나 사용하지 않은 순 목조 건물이고 계단이 딸린 누각식으로 되어 등반도 가능하다. 두터운 나무로 된 빨간 두 문짝은 위엄이 있고 장엄해 보인다. 

200개의 문짝과 189조각의 투조로 구성된 문루의 창문은 온갖 신화가 그려진 그림책을 방불케 한다. 웅장하고 복잡한 구도의 이 문루는 12개의 굵은 기둥과 24개의 대들보에 의지해 우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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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토사성의 풍우교)

동족의 풍격이 짙은 토사성의 풍우교(風雨橋)는 두 개의 교각에 복도와 정자가 접목된 다리이다. 다리 노면의 양쪽에는 난간을 세우고 그 곁에 의자를 두었으며 두 교각의 위에는 날아갈듯한 지붕을 덥고 기둥과 대들보에 그림과 조각이 화려한 건물을 지어 소박하면서도 예스럽고 아름답다. 

토사성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는 풍우교의 바로 옆에 위치한 토사왕부의 주요 건물인 구진당(九進堂) 이다. 333개의 기둥과 330개의 문, 90 여 개의 창문, 수 천 개의 목각 창틀로 구성된 구진당은 길이가 99.99m, 너비가 33m에 달한다.

멀리에서 구진당을 바라보면 높고 낮은 전각들이 줄지어 입체감이 두드러지고 웅장함과 화려함을 잘 보여준다. 토사의 황성이라 할 수 있는 구진당 문의 양쪽 기둥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용을 새겼고 두 기둥이 “구진당”이라는 액자를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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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토사성의 구진당)

문의 양쪽 외벽에는 토사왕궁의 네 문신(門神)인 몸집이 우람한 네 명의 무신이 조각되어 있다. 마당 아홉 개가 순서대로 펼쳐져 있고 마당마다 마당의 주변에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고 해서 이름한 구진당의 주 건물은 아홉 번째에 있는 백호당(白虎堂)이라고 하는 후당(後堂)이다. 

구진당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건물도 가장 웅장한 이 백호당은 5층 건물이고 사당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구진당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건물이며 신비로운 곳이다. 

이 곳에는 토가족 조상의 위패와 토가족 조상이 백호임을 상징하는 백호의 위패가 공양되어 있다. 토가족들은 새 해가 시작될 때나 명절 때면 이 곳에서 토가족의 조상에게 성대한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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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토사성의 건물)

은시의 고상가옥은 대표적인 토가족의 건물이다. 뒤에 산을 업고 물가에 지어진 은시의 고상가옥은 건물 앞에 유실수를 심거나 대나무를 심어 화사함과 푸름을 연출한다. 

고상가옥의 한 면은 지면과 연결되고 다른 한 면은 기둥에 의해 지면과 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조한 건물 2층의 왼쪽 방은 주방이고 가운데 방은 거실로 사용되며 기둥 위에 위치한 오른쪽 방은 곁채로 사용한다. 

뱀과 같은 산짐승이 쉽게 이르지 못하는 2층에는 주인이 머물고 1층에는 땔감을 쌓아두거나 집짐승을 키우는 공간으로 사용해 고상가옥의 효용성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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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토사성의 일각)

길이 2km가 넘고 너비 1.2m의 토사성벽도 산발을 따라 구불구불 조성되어 웅장함을 자랑한다. 토사제도기간 각 토사들이 방어수단으로 각자 성을 많이 쌓았다. 

성에는 봉화대도 만들어 적이 공격해 오면 불을 지펴 모두가 함께 적을 방어하도록 하기도 했다. 은시토사성에는 오늘날도 그런 어제를 지켜본 성과 봉화대가 보존되어 있다. 

그밖에 토사성에서 가장 높은 곳의 성벽에 종루(鐘樓)가 세워져 있다. 3층 건물로 된 종루의 1층은 성벽이고 2층은 성루이며 3층은 동서남북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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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토사성의 일각)

종루에는 999자의 명문이 새겨진 큰 종이 걸려 있다. 종에는 토사성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상인 파인에 대한 토가족들의 그리움, 토가족들의 비장한 역사 등이 기록되어 있다. 

토사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 종은 토가족의 조상과 역대 토사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며 조정에서 새로운 토사를 책봉할 때도 사용되고 해마다 풍작이 들게 해달라고 천지에 제사를 지낼 때도 사용된다. 

과거 이 종이 울리면 토사는 많은 문무 직원과 왕실의 종친들을 거느리고 토가족들과 함께 향을 지피고 경건하게 참배를 하면서 성대하고 신성한 제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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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어목채)

키워드: 

역사인문, 고건물, 민속

위치와 교통: 

어목채는 호북(湖北, Hubei)성 은시(恩施, Enshi) 자치주 이천(利川, Lichuan)시 대흥(大興, Daxing)향 이천시에서 60km 거리, 중경(重慶)에서 50km 거리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이천에 도착한 다음 이천에서 대흥행 버스를 이용, 2시간이면 도착한다. 

은시토사성은 은시시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은시에 도착한 다음 도로로 이동하며 등룡동은 이천시에서 6.8km 거리의 근교, 청강의 상류에 위치, 이천에서 차량을 대절해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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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등룡동)

계절: 

4,5월

설명: 

토가족의 마을 어목채와 토가족의 고상가옥이 아름다운 은시 토사성을 보면서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동굴인 등룡동(滕龍洞)도 함께 보면 좋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이 동굴은 웅장하고 험준하며 기이하고 아늑하며 절묘한 특징을 자랑한다. 

등룡동에는 물이 고여있지 않는 동굴 한동(旱洞)도 있고 지하수가 흐르는 동굴 수동(水洞)도 있다. 길이 52km가 넘는 한동은 입구의 높이가 74 m, 너비 64m에 달해 아시아 최대의 동굴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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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등룡동의 내부)

수동에는 청강(淸江)의 물이 흘러 들어 23m 높이의 폭포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 구간에 이르러 강물이 등룡동에 흘러 들면서 와룡이 강물을 삼키는 의미의 웅장한 와룡탄강(臥龍呑江) 폭포로 변신한다. 

이 구간에서 등룡동에 흘러 들어 16.7km 길이의 지하수로 변한 청강에서는 또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투명한 물고기가 자라서 등룡동에 인기를 더해준다. 

물이 없는 동굴과 물이 흐르는 동굴이 벽 하나를 사이 두고 있어서 신기하고 동굴 곳곳에 돌 기둥과 석순, 돌 꽃, 석인, 돌 원숭이 등 다양한 경관이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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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청강)

호북성 은시에서 발원해 423km를 흘러 장강(長江)에 흘러 드는 청강(淸江)은 토가족의 젖줄이다. 물이 맑고 양안의 경치가 수려한 은시 구간의 청강은 굽이와 여울이 많아서 래프팅의 명소이기도 하다. 

청강에서 래프팅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은 길이가 38.5km에 달하는데 가장 좁은 곳은 15m 미만이고 가장 넓은 곳은 200m에 달한다. 고무 보트를 타고 청강을 흐르면서 다섯 구간의 협곡을 지나고 48개의 여울을 지나면 한 여름이 무더위가 가신 듯 사라진다. 

청강의 양쪽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벼랑에 조성된 동굴에는 신비로운 무덤이 있고 산 자락에는 온갖 들꽃이 화사하며 가끔 처녀들의 노래가 들려오는 청강의 래프팅도 은시의 명물이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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