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아름다운 성산두)
개관:
중국의 희망봉 성산두(成山頭)는 삼면이 바다이다. 진시황제(秦始皇帝)는 바위산이 솟은 이 곳을 “하늘의 끝”이라 했고 중국의 육지와 바다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이 곳은 태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해발고도 200m, 동서 너비 1.5km, 남북 길이 2km, 부지 2.5제곱 킬로미터의 성산두에는 푸른 산봉이 기복을 이루고 주변에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아름답고 장관이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성산두)
역사:
고대 중국의 사서 <사기(史記)>에는 성산두가 과거 태양의 신이 머물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219년과 210년에 진시황제가 2번이나 성산두에 이르러 태양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조물을 지어 현재 진교(秦橋) 유적과 진대입석(秦代立石) 등 유적지가 남아 있다.
기원전 94년 한무제(漢武帝)가 문무관원들을 이끌고 동쪽을 순시하다가 이 곳에 이르러 성산두 일출의 기이한 경관에 매료되어 성산두에 태양에 참배하는 단 배일대(拜日臺)와 태양의 사당 탁일주사(拓日主祠) 등 건물을 축조하게 했다.
1874년 성산두 동쪽에 16.3m 높이의 등대를 축조, 이 등대는 현재도 정상적으로 사용된다. 바다에 짙은 안개가 낄 경우 선박들이 등대의 불빛을 보지 못할 것을 우려해 등대의 옆에 안개경보기를 가설해 안개가 낄 경우 2분에 한 번씩 자동으로 경적이 울린다.
성산두는 1988년 국립 풍경명소가 되고 2004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8대 해안”에 선정, 해남(海南) 삼아(三亞)의 아롱만(亞籠灣), 대만(臺灣) 기륭(基隆)의 야류(野柳)와 함께 되었으며 삼위권에 들었으며 2011년 국립 해양공원이 되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성산두)
주요명소:
해발고도 200m의 성산두는 동서 너비가 1.5km, 남북 길이가 2km에 달한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중국의 육지인 이 곳에서 한국까지의 거리는 94해리밖에 안 된다.
붉은 색의 화강암으로 구성된 성산두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솟아 있고 기슭으로는 파도가 밀려와 수려하고 장엄한 경치를 연출하며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유적지도 거느린다.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 아찔한 바위의 성산두에는 높이 180cm, 너비 85cm, 두께 35cm의 “무진두(無盡頭)” 비석이 세워져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진두는 성산두의 경관을 형상적으로 잘 보여준다.
(사진설명: 성산두의 일각)
성산두의 명소로는 바다 나귀 섬과 시황묘(始皇廟), 진나라 때의 비석, 배일대(拜日臺), 망해정(望海亭), 관도각(觀濤閣), 진룡석(鎭龍石), 야생동물원 등이 있다.
사서에서 진황궁(秦皇宮)이라고도 부르는 시황묘는 성산의 남쪽 언덕, 진시황제가 이 곳을 시찰할 때 황제의 행궁(行宮)을 지었던 자리에 위치해 있다.
현지인들은 시황묘를 끊임없이 증축했으며 도교(道敎)의 도사들이 시황묘를 관리해 명나라 때에 이르러 본전이 3채에 달하고 별채는 부지기수이며 이 곳에 머무는 도사는 200명에 달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다.
(사진설명: 성산두의 진대입석)
그 뒤에 시황묘가 소각되고 무너져 현재는 시황제의 조각상과 두 그루의 은행나무, 황제가 내린 등세창(鄧世昌)의 비석, 해신낭낭(海神娘娘)묘만 남아 있다.
진시황제는 성산두에 이르러 당시의 승상이었던 이사(李斯)에게 명을 내려 “무진두(無盡頭) 진동문(秦東門)”이라는 글을 비석에 새겨 성산두 산봉에 세우게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비석이 두 쪽으로 동강나고 상반부는 사라졌으며 현재는 높이 120cm, 두께 75cm 의 하반부, 진대입석(秦代立石)만 남아 있다. 전문가에 의하면 성산두의 바위와 다른 석질을 사용한 이 비석은 확실히 2천년 전의 진나라 때 세운 것이라고 한다.
(사진설명: 성산두의 건물)
진교유적(秦橋遺蹟)은 진시황제가 성산두에 이르러 바다에 나가 일출을 보고 불로장생의 선약을 찾기 위해 축조한 다리 유적이다. 전한데 의하면 그 때 진시황제는 밤에 낮을 이어 돌을 가져다 바다를 매립하고 다리를 축조해 동해의 용왕을 감동시켜 용왕이 바다의 신을 파견해 다리 축조를 도왔다고 전해진다.
<삼제약기(三齊略記)>의 기록에 의하면 바다의 신 해신(海神)이 하루 밤 사이에 20km 길이의 다리를 축조해 감동된 시황제가 해신을 만나서 사의를 표하고자 했다고 한다.
해신은 “나는 참으로 못 생겼으니 나를 그림으로 그리지만 않으면 제왕과 만날 것이다”고 했고 시황제는 그렇게 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시황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몰래 화가를 데리고 해신과 만나 해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사진설명: 성산두의 사교대)
그 사실을 알게 된 해신은 화가 나서 약속을 어겼다고 시황제를 꾸짖으면서 축조한 다리를 무너뜨렸고 그래서 현재 네 개의 교각만 남아 내려온다는 내용이다.
사교대(射鮫臺)도 진시황제 때의 유적지이다. 진시황제 산하에 서복(徐福)이라는 방사가 있었는데 동해에 세 개의 선신(仙山)이 있고 그 산에 불로장생의 선약이 있다고 황제에게 고했다.
그 말을 믿은 진시황제는 서복에게 삼천의 동남동녀와 많은 금과 은을 내리면서 선약을 찾아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불로장생의 선약을 찾지 못한 서복은 동해에 큰 상어가 선약을 지키고 있어서 선약을 캐지 못했다고 황제를 속였다.
(사진설명: 성산두의 일출)
이번에도 서복의 말을 믿은 시황제는 유명 사수들을 불러 성산두 바닷가의 바위 위에 올라서서 상어를 쏘라고 명했고 그러면서 그 바위는 상어를 사격한 단이라는 의미로 사교대라 불리게 되었다.
성산두 인근 수역에는 해마다 2백일 이상 자욱한 운무가 낀다. 운무가 바다에서 피어 오르면 안개 경보기가 울리고 선박들은 안개 속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는데 선박의 불빛이 명멸해 용이 바다로 나가는 듯 하다.
운무 속에서 보는 성산두의 일출은 더욱 신비로워 옛 사람들은 “조무(朝無)’라고 했다. 자욱한 운무 속에서 꿈틀거리는 태양이 정말로 “춤 추는 태양신”을 방불케 한다.
(사진설명: 해려도의 조류)
해려도(海驢島)는 사실 이름처럼 바다 나귀의 섬이 아니라 갈매기의 섬이다. 해마다 청명이 지나면 수천 수만의 갈매기들이 날아 들어 섬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운다.
하늘을 높이 날기도 하고 낮게 날며 파도와 싸우며 또 혹은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은 보기만 해도 역동적이다. 수천 년 동안 파도에 씻겨 다양한 경관을 이루는 바위와 밀물, 썰물, 파도가 갈매기와 어울려 해려도만의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한다.
해마다 봄과 여름이 되면 수많은 검은 꼬리 갈매기와 노란 부리 백로가 섬에 날아든다. 세계적으로 노란 부리 백로는 3천 마리밖에 안 되는데 해마다 해려도에 날아드는 노란 부리 백로는 무려 천 마리가 된다.
(사진설명: 해려도의 들꽃)
해려도에는 또 야생 유채꽃과 자귀나무가 많아서 해마다 계절이 되면 섬 전체가 노란 유채꽃과 분홍색의 화사한 자귀나무 꽃으로 덮여 푸른 하늘, 푸른 바다와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 없다.
멀리서 해려도를 바라보면 아찔한 절벽 위에 꽃이 화사하고 갈매기가 그 위를 날아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다. 봄과 여름에 해려도에 오르면 갈매기와 함께 바다 섬의 꽃구경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해려도에서는 바위도 아주 볼만 하다. 오래 동안 파도와 부대끼면서 돌기둥과 낭떠러지 등 대표적인 해식바위 경관을 형성하고 곳곳에 크고 작은 동굴이 즐비하다.
(사진설명: 해려도의 조류)
해려도에는 원래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현재는 기존의 군용 캠프를 간이 숙박시설로 개진해 섬에서 숙박도 가능하며 그 밖에 해려도에서는 텐트를 임대할 수도 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면 해려도는 적막함에 빠져 들고 들리는 것은 오직 갈매기의 은은한 울음소리 뿐이며 맑은 밤 하늘에는 별무리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환상적이다.
성산두 남쪽의 마산항(馬山港)은 백조의 왕국이다. 마산항 수역에는 물고기와 새우 등이 많고 환경이 좋으며 기후가 습윤해 해마다 수많은 백조가 이 곳에서 겨울을 난다.
(사진설명: 성산두와 바다)
키워드:
풍경, 역사인문
위치와 교통:
장도는 산동(山東, Shandong)성 영성(榮成, Rongcheng)시, 위해(威海, Weihai)와 75km 거리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위해에 도착한 다음 성산두행 버스를 바꾸어 탄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유공도)
계절:
5-9월
설명:
성산두 관광에서는 “가라앉지 않는 군함”이라 불리는 섬 유공도(劉公島)를 함께 보면 좋다. 명나라 때부터 해상 방어의 군사요충지가 된 유공도에는 많은 군사 유적들이 남아 있다.
유공도의 볼거리 중 북양(北洋)해군 제독서(提督署)와 수사학당(水師學堂) 등 청나라 때 건축물을 기반으로 북양해군과 중일 전쟁을 생동하게 재현한 중국 갑오(甲午)전쟁 박물관이 가장 유명하다.
그 밖에 80여 종의 수목과 야생 화초 50여 종, 조류 50여 종이 있는 해상 산림공원과 유공도 주변의 크고 작은 섬을 어우르는 해양공원, 골프 박물관, 지하통로와 군영, 탄약고 등이 갖추어진 북양 포대도 볼만하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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