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19-10-28 12:05:00 출처:cri
편집:李仙玉

영거: 고대의 수리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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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영거)

개관: 

기원전 214년에 개통된 고대의 수리시설인 영거(靈渠)는 교묘하고 정교한 설계로 도강언(都江堰), 정국거(鄭國渠)와 함께 진(秦)나라 3대 수리공사로 꼽히며 이로부터 “북쪽의 장성, 남쪽의 영거”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운하의 하나인 영거는 “세계 고대수리건설의 보석”이라 불리며 교묘한 설계와 아름다운 경치로 2018년에 세계관개시설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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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영거)

역사: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秦始皇帝)는 중국을 통일한 후 군사 50만명을 5갈래로 분류해 남쪽의 백월(百粤)을 정벌하게 했으며 그 중 한 갈래의 군대가 호남(湖南)과 광서(廣西) 접경의 교통 요충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반항이 거세서 군사들은 3년 동안 남진하지 못했고 군수품 보급도 어려워 기원전 219년 진시황제는 사록(史錄)에게 군수품 보급을 담당하라 명했다. 

사록은 군수품 보급선을 개발하기 위해 상(湘)강과 리(漓)강을 연결하는 인공물길을 팠고 그 물길이 바로 기원전 214년에 완공한 영거(靈渠)이다. 그로부터 영남(嶺南)을 통일하는 진시황제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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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영거)

당(唐)나라 때인 825년 물길이 무너지면서 영거로 배가 통하지 못하게 되었다. 광서의 관리로 있던 이발(李潑)이 물길을 막아 남쪽과 북쪽의 수로에 물이 흘러 들도록 하는 언제 대소천평(大小天平)을 축조하고 남북 수로에 수위를 조절하는 수문인 두문(陡門)도 만들어 배들이 원활하게 물길을 오갔다. 

그 뒤에 당나라 때인 868년과 북송(北宋) 때인 1044년, 남송(南宋) 때인 1194년, 원(元)나라 때인 1345년, 명(明)나라 때인 1396년, 청(淸)나라 때인 1714년 등 여러 번에 걸쳐 영거를 보수, 증축했다. 

1932년 홍수로 영거의 일부 시설이 파손되었고 1953년과 1975년-1979년, 1983년에 걸쳐 물길을 정리하고 영거의 수리시설을 복구해 오늘날의 경관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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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멀리서 본 영거)

주요명소:

기원전에 사록(史錄)이 진시황제(秦始皇帝)의 명에 따라 오늘날의 광서(廣西) 흥안(興安)현 경내 상강(湘江)의 지류인 쌍여정계(双女井溪)와 리강(漓江)의 지류인 시안수(始安水)강 사이에 언제를 쌓고 물길을 조성해 상강과 리강을 연결했으며 나아가서 장강(長江)과 주강(珠江)까지 연결하는 운하 영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영거는 대소천평(大小天平)과 화취(鏵嘴), 설수천평(泄水天平), 남북거(南北渠), 두문(陡門), 수함(水涵), 언패(堰坝), 진제(秦堤), 교량 등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물을 막은 언제에 축조된 화취는 앞 부분이 뾰족하고 뒤 부분이 둥글어 농기구인 보습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이름이 화취이다. 대소천평과 연결되어 물길을 분류하는 분수령(分水嶺) 역할을 하는 돌로 축조한 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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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영거의 대소천평)

화취는 대천평과 소천평이 연결되는 곳에서 시작되고 뾰족한 앞 부분이 상류로 뻗으면서 원래 한 갈래이던 물길을 두 갈래로 분류, 한 갈래는 남거를 통해 리강으로 흘러 들고 다른 한 갈래는 북거를 경유해 상강으로 흘러 간다. 

화취의 하류에 축조된 물길을 막는 언제인 대소천평은 한자로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 언제를 이용해 물길의 수위를 조절한다고 해서 천평(전자저울의 의미)이라 한다. 

소천평의 왼쪽에 물을 남거로 끌어들이는 남두(南陡)를 두고 대천평의 오른쪽에 물을 북거로 끌어들이는 북두(北陡)를 두어 남거와 북거가 이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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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영거의 물길)

대천평은 길이가 344m, 너비가 13-25m, 최대의 높이는 2.24m에 달하고 물에 잠긴 부분의 길이는 213m에 달한다. 소천평은 길이가 130m, 너비 24m, 최대 높이 2.24m이다. 

남북거는 상강과 이강 두 강물을 연결하는 수로이며 이 수로에는 갑문(閘門)이라고도 하는 수위 조절용 수문 두문 36개를 두었다. 남거는 길이가 33km에 달하고 수면의 너비는 8-15m, 수심은 1-1.8m이다. 

남거의 왼쪽 기슭은 상대적으로 지세가 높아 바위산을 깎았고 물길의 오른쪽 기슭에는 돌로 언제를 쌓았으며 이 언제가 바로 진제(秦堤)이다. 진제는 길이가 3.2km, 너비 2m, 높이 1.5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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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영거의 수문)

북거는 길이가 3.2km, 너비는 10-15m에 달하고 경사도가 있어서 흐르는 물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두 곳에 물길을 S자형으로 조성했다. 그 밖에 북거와 남거에는 제2차 배수용 수문인 설수천평을 하나씩 두었다. 

두문은 선박의 통행을 위해 수위를 높게 해주는 수문이다. 당나라 때부터 두문을 축조했고 역대 별로 두문의 숫자도 다양하며 현재 보존된 두문은 도합 14개이다. 

두문은 물길의 양쪽 기슭에 높이 2m의 단을 쌓은 반달모양이나 타원형, 원형, 조각달 등 모양의 축조물이다. 두문의 수면너비는 6m에 달하고 두문과 두문 사이의 거리는 최소 60m, 최대 2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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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영거의 언제)

한 두문을 막으면 수위가 높아지고 그러면 선박이 상류의 다른 두문으로 넘어가면서 배는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따라서 이런 두문은 고대의 기이한 경관으로 인정된다. 

언패는 물길을 막아 농경지에 물을 대거나 물방아를 돌리는 관개시설이다. 언패는 북거에 2개, 남거에 32개를 두어 맑은 물이 영거 양쪽의 농경지를 살찌게 한다. 

영거는 진령(秦嶺)남쪽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으며 광서와 중원지역간의 경제 문화 교류를 크게 추진했다. 그 밖에 영거의 주변에는 다양한 문화명소들도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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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영거의 절)

남거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사현사(四賢祠)는 정원이 딸린 건물이다. 이 사당에는 영거축조에 기여한 진나라 때의 사록과 한나라 때의 마원(馬援), 당나라 때의 이발(李潑) 등의 조각상이 공양되어 있다. 

사현사의 신축연대는 미상이고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 수차 보수, 증축했으며 오늘의 건물은 1985년에 개축한 것이다. 건물은 2층이고 건물의 주변에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사현사에는 원나라와 명나라 때의 석각 10여기가 보존되어 있으며 청나라 건륭(乾隆) 년간의 돌 비석을 감싼 고목 한 그루가 있어서 사현사의 명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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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영거의 바위)

사현사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언제에 4m 높이, 20m 둘레의 모난 바위가 하나 놓여져 있다. 비래석(飛來石)이라 이름하는 이 바위의 위에는 금목서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바위의 사면에는 석각이 즐비하다. 

영거에는 온갖 다리도 많으며 그 중 가장 오래된 다리는 축조연대가 미상인 속가교(粟家橋)이다. 아치형 석교인 속가교는 길이가 7m, 너비 3m에 달한다. 

그 밖에 예스러운 정자가 있는 825년에 신축한 만리교(萬里橋)와 무지개 다리인 1668년에 신축한 창랑교(滄浪橋), 983년에 신축한 접룡교(接龍橋)는 모두 1980년대에 기존의 모습대로 개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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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키워드: 

고대 축조물

위치와 교통: 

영거(靈渠, Lingqu)는 광서(廣西, Guangxi) 장족 자치구 계림(桂林, Guilin)시 흥안(興安, Xing’an)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계림에 도착한 다음 계림에서 흥안행 버스를 이용한다. 

계절: 

4-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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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도강언) 

설명: 

진나라 3대 수리공사로는 영거 외에 도강언(都江堰)과 정국거(鄭國渠)이다. 사천(四川) 성도(成都)의 민강(岷江)에 축조된 도강언은 세계문화유산이고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도강언은 기원전 265년에 축조를 시작해 기원전 251년에 완공했으며 지난 2천 여 년 동안 홍수방지와 관개역할을 유지해 성도벌판이 천부지국(天府之國)으로 되는데 일조했다. 

도강언은 세계적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지금까지 보존되며 지금도 사용하는 유일한 수리시설이며 언제 없이 물길을 분류하는 최대의 수리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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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영거)

기원전 246년부터 축조한 수리시설인 정국거는 섬서(陝西)성 경양(泾陽)현 경하(泾河)강에 위치해 있다. 경하의 강물을 낙수(洛水)강에 끌어 들이는 이 수리시설은 물길의 길이가 300km에 달하고 관개면적은 4만 헥타르에 달한다. 

정국거는 246년에 한(韓)나라의 수리 기술자인 정국(鄭國)이 10년의 시간을 들여 축조했다고 해서 이름이 정국거이다. 정국거는 2016년에 세계관개시설 유산에 등재되었다. 

기원전 246년 날로 강대해지는 진나라에 위협을 느낀 한나라가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하려는 저의로 정국을 진나라에 파견해 관중(關中) 지역에 관개수로 조성을 간언하게 했고 진나라 임금은 그 제언을 받아 들여 정국에서 공사를 시작하라고 명했다. 

정국거 완공 후 관중지역의 농업생산 여건이 대폭 향상되고 농업발전속도가 빨라졌으며 관중지역은 해마다 풍년이 드는 관중의 “천부지국(天府之國)”이 되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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