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0-07-09 13:32:14 출처:cri
편집:李仙玉

대만 고궁: 국보의 소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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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만고궁)

개관: 

베이징(北京)의 고궁박물원을 모방해서 축조한 대만 고궁(故宮)박물원은 중국의 궁궐 양식으로 설계되어 웅장하고 우아하다. 건물은 하얀 외벽에 녹색의 기와를 얹어 산뜻하면서도 특색이 다분하다. 

중국 3대 박물관의 하나이고 대만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만 고궁박물원에는 베이징의 고궁(故宮)과 남경(南京)의 고궁, 심양(瀋陽)의 고궁, 승덕(承德)의 피서산장, 이화원(颐和園) 등 황실에 소장되었던 문화재 70 만 점이 소장되어 국보의 소장지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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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만 고궁)

역사: 

1911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퇴위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건국된 후 1914년 승덕 피서산장과 심양 고궁의 문화재를 베이징으로 옮겨와 자금성의 문화재와 함께 “문화재 전시실”을 만들었고 1925년 베이징 자금성에 “고궁박물원”을 설립했다. 

1931년 9.18 사변 후 일본군은 중국 침략 속도에 박차를 가했고 중화민국정부는 문화재를 남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고궁박물원의 문화재 20만 점을 선별해 일일이 번호를 매기고 박스에 포장해서 먼저 상해(上海)에 보관했다. 

그 뒤에 일본군이 상해에 이르게 되자 문화재를 사천(四川)에 옮겼다가 1945년 승전 후 중경(重慶)에 문화재를 집중시켰고 1947년 모든 문화재를 남경(南京)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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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만 고궁)

1948년에 국민정부는 문화재 중 2972박스를 대만으로 옮겼고 남경에는 1,1178박스의 문화재가 남았다. 남경에 남은 문화재 중 다수는 1950년대에 베이징 고궁으로 반환되었고 2 천 여 박스가 현재까지 남경에 남아 있다. 

1962년 대북 양명산(陽明山) 기슭 쌍계(雙溪)에 대만 고궁박물원 건물 공사를 시작했고 1965년에 공사를 마쳤으며 박물원에 문화재를 전시해 그 해 11월 12일 공식적으로 개원했다. 

2009년 2월 대만 고궁박물원 원장이 베이징의 고궁박물원을 방문해 최초로 대륙과 대만 고궁간 교류를 시작했으며 그 해 3월 베이징 고궁박물원 원장이 대북을 방문해 대륙과 대만 고궁 공동 전시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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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멀리서 본 대만 고궁)

주요명소:

뒤에 청산을 업고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식 건물인 대만 고궁박물원은 4층으로 되어 있으며 본관 건물의 단면은 매화꽃모양이고 층마다 5개 홀로 분류되어 있다. 

매화꽃 모양의 단면도 중국의 문화를 잘 보여주고 건물 앞의 광장에 세워진 여섯 기둥에 받들려 있는 패방(牌坊)도 중국의 전통문화를 잘 보여주면서 웅장함과 우아함을 자랑한다. 

대만 고궁박물원에는 송(宋)나라 때부터 청나라까지의 문화재 70만 점이 소장되어 있고 기증과 구입을 통해 해마다 소장품의 숫자가 계속 증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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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대만 고궁의 야경)

다양한 종류의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품 중 도자기와 서예, 청동기가 가장 많고 그 밖에도 옥기와 칠기, 문구, 조각, 자수, 도서, 문헌 등도 있다. 그 중 갑골문서가 2만 여 점, 원시사회부터 청나라 까지의 도자기는 2만 여 점에 달한다. 

청동기는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의 청동기 4300 여 점을 망라해 1만 여 점에 달하고 왕희지(王羲之)와 황공망(黃公望), 소동파(蘇東坡)의 작품을 망라한 고대 서화는 1만 여 점, 중국에 4부만 남은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망라한 고서는 20만 권, 황제의 주필(朱筆)을 망라한 명나라와 청나라 문헌은 40만 여부에 달한다. 

취옥배추(翠玉白菜)는 배추 모양으로 된 옥 조각물이다. 대만 고궁박물원의 취옥배추는 색깔과 모양이 배추와 거의 백 퍼센트 동등하다. 심지어 배춧잎에 있는 곤충의 가는 촉각까지 다 보일 정도로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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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정교한 취옥배추)

배추는 평소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채소로 친근성을 주고 하얗고 파란 색깔의 배추는 순결을 상징하며 배춧잎의 곤충은 다산을 의미해서 특히 신혼부부들이 자신의 집에 옥으로 조각한 배추를 공예품으로 많이 사용한다. 

대만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은 동진(東晉) 때 서예의 대가 왕희지(王羲之)의 서예작품이다. 작품은 4행 28자로 되어 있으며 행서체와 해서체를 자유자재로 사용해 물이 흐르다가 멈추듯 독특한 운율을 자랑한다. 

작품은 눈이 내리고 하늘이 맑게 갠 때 즐거운 기분으로 벗에게 안부를 전하는 왕희지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필치의 서예는 저자의 여유를 잘 보여주고 글자마다 필체가 다르면서도 전반적인 밸런스를 유지해 이 세상 최고의 서예작품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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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부춘산거도”의 일각)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는 원(元)나라 화백 황공망(黃公望)이 1350년에 창작한 수묵화이며 중국 10대 명화 중 하나이다. 오랜 세월 전해지면서 그림은 반으로 나뉘어 앞 부분은 절강(浙江)성 박물관에 소장되고 뒤 부분이 대만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절강의 부춘강(富春江)을 배경으로 한 그림은 화면이 말쑥하고 우아하며 산과 물, 짙은 색과 옅은 색을 조화롭게 잘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 최초로 대북의 고궁에서 그림의 앞 부분과 뒤 부분을 합쳐 완전한 <부춘강거도>를 전시했다. 

대만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한식첩(寒食帖)>은 소동파 행서체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좌천된 소동파의 우울하고 외로운 기분을 잘 보여주며 “천하제삼행서(天下第三行書)”라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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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대만 고궁의 청동기)

명나라 화가 장굉(張宏)의 산수화 <화자강도(華子岡圖)>는 장굉이 화자강의 야경을 묘사한 시에 의거해 자신이 그 야경을 보기라도 한 듯 산마루에 올라선 시인이 본 야경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장굉은 사실적 수법으로 진실된 산수를 그리면서도 몽롱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시적인 느낌을 보여주었으며 산자락의 마을에서 한 사람이 쌀을 빻는 것도 그리고 골목에서 개가 짖는 모양도 그려 사실주의 수법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베이징 고궁에 소장되었다가 대북 고궁에 옮겨 소장되고 있는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청나라 건륭(乾隆)제 때 편찬한 백과전서이다. <사고전서>는 중국의 고전문화를 집대성해 이 백과전서에서는 문학과 역사, 철학, 이공, 농업, 의학 등 거의 모든 학과의 뿌리와 맥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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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대만 고궁의 내부)

360여 명의 관리와 학자들이 편찬하고 3800여 명이 필사하여 13년만에 마친 이 백과전서는 3,462종의 도서에 권수는 79,338권, 글자수는 8억자이다. 

“사고전서”는 원래 도합 7부를 필사해 자금성의 문연각(文淵閣)과 심양 고궁의 문소각(文溯閣), 원명원(圓明園)의 문원각(文源閣), 승덕 피서산장의 문진각(文津閣), 양주(揚州)의 문회각(文滙閣), 진강(鎭江)의 문종각(文宗閣), 항주(杭州)의 문란각(文瀾閣)에 소장했다. 

지난 200 여 년 동안 그 중 3부는 유실되고 현재는 원래 자금성에 소장되었던 문연각 버전이 대만 고궁박물원에 소장되고 문진각 버전은 베이징 도서관, 문소각 버전은 감숙(甘肅) 도서관, 문란각 버전은 절강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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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만대학)

키워드: 

역사문화

위치와 교통: 

대만 고궁 박물원(臺灣故宮博物院)은 대북(臺北, Taibei)시 쌍계(雙溪, Shuangxi)로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대북에 도착한 다음 지하철 신의선(信義線)을 이용하거나 255호선과 304호선, 815호선 등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계절: 

1년 4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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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대만대학교) 

설명: 

대만 고궁 박물원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한다면 대만대학교는 현대 학문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1928년에 기존의 제국대학교를 기반으로 설립된 대만대학교는 대만에서 가장 유구한 대학교이다. 

대만대학교의 건물은 우아하면서도 웅장하고 고유의 특징을 자랑하며 캠퍼스 부지가 넓어 수업이 끝난 후 10분 안에 다른 수강실로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전거가 대만대학교 캠퍼스의 특색이 되었다. 

캠퍼스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정문 동쪽의 부원(傅園)이다. 이 곳은 과거에 식물원이었고 부사년(傅斯年) 대만대학교 초대 총장이 별세 후 이 곳에 묻혀 부원이라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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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대만대학교의 캠퍼스)

부원은 고요하고 숙연하다.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책을 읽거나 묵상에 잠겨 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한 묘실은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부사년 총장을 기념하기 위한 부종(傅鍾)은 대만대학교의 정신적인 상징이다. 대만대학교의 또 다른 명물은 철쭉이다. 캠퍼스 곳곳에 철쭉나무가 자라 꽃피는 3월이 되면 화사하고 향기로운 철쭉꽃의 바다가 펼쳐져 장관이다. 

대만대학교 캠퍼스 중앙의 야림대도(椰林大道) 또한 사람들이 잘 아는 대만대학교의 심벌이다. 이 거리의 한 쪽에는 일제 점령시기 남긴 서구식의 붉은 벽돌 건물이 역사를 보여준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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