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19-04-15 16:54:32 출처:cri
편집:李仙玉

安陽: 중국 제1의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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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안양 은허)

개관: 

중국 제1의 고도(古都) 안양(安陽)은 3 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의 도시이며 중화문명의 주요한 발상지로 중국  7대 고도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장군인 부호(婦好)의 무덤과 전설의 제왕들인 전욱(䳪頊)과 제곡(帝喾)의 무덤, 중국 최초의 고도인 은허(殷墟) 유적지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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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 유적지의 일각)

역사:

2만 5천 년 전부터 1만 3천 년 전의 구석기 시대에 안양 일대에는 인간이 살며 소남해(小南海) 문화를 형성했다. 전설 속 5대 중국의 제왕,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한 명인 전욱(䳪頊)이 이 곳에 도읍을 정하고 사후에도 이 곳에 묻혔다. 

기원전 1600년- 기원전 1046년의 상(商)나라 제12대 왕 하단갑(河亶甲)이 왕위를 즉위한 후 도읍을 안양에 천도했고 그 뒤에 하단갑의 아들이 즉위한 후 안양에서 국도를 다른 곳으로 천도했다. 

상나라 제20대 왕인 반경(盤庚)이 일곱 번째로 상왕조의 도읍을 다시 안양에 옮기고 은(殷)이라 개명했으며 그로부터 상 왕조의 12명의 왕이 273년간 안양에 도읍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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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 유적지 일각)

기원전 776년-기원전 476년의 춘추(春秋)시대에 안양은 위(魏)나라에 속했다가 후에 진(晉)나라에 속했으며 기원전 475년-기원전 221년의 전국(戰國)시기에 하(夏)나라의 여섯 번째 왕이 35년간 안양에 도읍을 두었다.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군현제(郡縣制)를 시행하면서 전국을 36개 군으로 분류, 안양은 하내군(河內郡)에 속했다. 그 뒤에 안양은 다양한 행정구역에 속하다가 서기 1368년의 명(明)나라 때부터 하남(河南)성에 속했다. 

1949년 안양 해방 후 안양시를 설립했고 평원(平原)성에 귀속되었으며 1952년에 평원성을 취소하고 안양시를 성 직할시로 하남성에 귀속시켜 오늘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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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 갑골문 일각)

상왕조 후반의 성곽 유적인 은허는 상나라의 제20대 왕이 국도로 정한 후 12명의 상나라 왕이 273년간 통치해온 중국 상나라 때의 정치와 경제, 문화, 군사의 중심지이다. 

20세기초 은허유적지에서 거북의 껍데기에 쓴 가장 오래된 글자 갑골문(甲骨文)과 많은 청동기들이 출토되어 상왕조의 눈부신 문명을 증명했다. 

문헌기록이 증명하는 중국의 첫 번째 도읍인 은허는 1961년 중국 중점 문화재 보호업체에 선정되었고 2006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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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 유적지의 정문)

주요명소:

안양에는 상왕조의 국도 유적지인 은허(殷墟)와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한 바위산의 물길 홍기거(紅旗渠), 험준하고 아름다운 협곡 태항산(太行山) 협곡, 애국 장군의 사당 악비묘(岳飛廟), 전설 속 황제인 전욱(䳪頊)과 제곡(啼喾)의 무덤 이제릉(二帝陵) 등 다양한 명소들이 있다. 

기원전 1600년-1046년의 상(商)나라 도읍의 유적지인 은허는 궁전종묘(宮殿宗廟)구역과 왕릉(王陵)구역, 환북상성(洹北商城) 구역으로 분류된다. 

안양시 환하(洹河)강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 궁전종묘 구역은 은허유적지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상왕조의 왕이 업무를 보고 주거하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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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의 부호묘)

이 곳에는 궁전과 사당 등 80여 채 건물들의 기초가 남아 있고 서쪽과 남쪽에는 인공으로 방어용 해자를 팠던 흔적이 남아 있어 궁전과 종묘 구역을 품에 안고 있다. 

이 구역에는 또 상나라의 왕 무정(武丁)의 아내 부호(婦好)의 무덤이 보존되어 있다. 이 무덤은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한 상나라 왕실 성원의 무덤이며 갑골문에 의해 무덤의 주인과 그 신분이 확인된 유일한 상나라 왕실 성원의 무덤이기도 하다. 

부호를 망라해 16명이 묻힌 이 무덤에서는 468점의 청동기와 755점의 옥기, 564점의 골기가 출토되었으며 그 밖에 7,000 여 점의 바다 조개가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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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 유적지의 골기)

은허 궁전종묘구역에는 또 다수의 갑골문 동굴이 발견되었고 이런 동굴에서는 약 1만 5천 여 조각의 갑골문이 출토되어 은허의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 

환하강의 북쪽에 위치한 왕릉유적지에는 13기의 무덤과 2천 여 곳의 순장 무덤, 제사 무덤, 말과 차를 묻은 무덤 등이 산재해 있으며 이 곳에서도 많은 정교한 청동기와 옥기, 석기, 도기 등이 출토되었다. 

왕릉의 동쪽 제사구역에는 많은 제사 갱이 질서 있게 산재해 있고 갱에는 적지 않은 사람과 짐승들이 묻혀 이 곳이 과거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 곳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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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의 후모술대방정)

왕릉의 동쪽에서는 또 현재까지 발견된 청동기 중 무게가 가장 무거운 “후모술대방정(後母戌大方鼎)”이 출토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정은 무게가 무려 875kg에 달해 세계의 최고를 자랑한다. 

그 밖에 은허에서 출토된 청동기에는 정(鼎)과 곡(斛) 등 예기(禮器)와 징과 방울 등 악기, 칼과 창 등 병기, 도끼와 톱 등 도구, 동 거울과 국자 등 생활도구, 탈과 구리 호랑이 등 장식품 등 다양한 용도의 기물이 망라된다. 

은허에서 출토된 5천 여 점의 청동기 중 기법이 가장 정교한 청동기가 예기이다. 은허에서 출토된 예기는 품종도 많고 둥글고 모난 등 모양도 다양한데 가장 많은 모양은 둥근 청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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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박물관의 갑골문)

은허유적지에서 발굴된 청동기에는 또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한 금문(金文)이 장문으로 새겨져 그 문자를 통해 그 때의 진실한 상황을 알수 있다. 

은허에서 발견된 갑골문은 한자(漢字)의 전신(前身)이고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3대 문자의 하나이며 한자의 기원과 한자의 문자조형 법칙을 제공하고 중국의 문자기록을 상나라까지 앞당겼다. 

은허의 궁전구역 터에 조성된 은허 박물원은 상나라 건축물을 모방한 정원과 상나라 문화를 볼 수 있는 명소로 부상했다. 은허 박물원은 대문부터 모양이 아주 특이해서 멀리서 보면 마치 갑골문으로 된 문(門)자를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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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박물관 일각)

문의 나무 기둥과 문틀에는 상나라 때의 무늬가 새겨져 자연스러우면서도 기묘한 구도로 감탄을 자아낸다. 상나라 건물을 모방한 박물관은 장엄하면서도 질박하고 우아하다. 

상왕조 시기 궁전건물의 구도와 건축예술, 건축기법, 건축예술을 잘 보여주는 은허 박물관 건물에서는 중국 고대 건물 고유의 균형 감각과 질서, 심미안적 정서 등도 잘 느낄 수 있다. 

풍부한 문화재와 유구한 역사, 고대 중국의 건물 외에도 은허 유적지는 높은 성벽과 장엄한 궁전, “중심선” 구도를 자랑하여 수 천 년 동안 중국 역대 도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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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은허의 이제릉)

상고(上古)시대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제2제 전욱과 제3제 신곡의 무덤인 이제릉(二帝陵)은 안양에서 90km 거리, 하남 성도 정주(鄭州)에서 200km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제릉은 한(漢)나라 때 봉분을 쌓고 당(唐)나라 때인 830년에 건물을 지었으며 송(宋)나라 때인 968년에 건물을 보수하고 금(金)나라 때인 1167년에 개축했다. 

1986년 이제릉에서 165기의 역대 비석이 출토되어 이제릉은 중국에서 비석이 가장 많이 출토된 제왕의 무덤으로 인정된다. 또한 중심선을 따라 한나라 때 벽돌을 깐 통로와 당나라와 송나라 때의 건물 기초, 원나라 때의 담벽, 명나라 때의 제배대전(祭拜大殿), 신도(神道), 청나라 때의 배전(配殿)과 산문(山門), 어교(御橋)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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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이제릉의 일각)

현재 제사구역과 비석구역, 레저구역, 산림구역으로 구성된 이제릉에는 산문과 영성문(欞星門), 제배대전, 동서 곁채, 비석의 회랑, 우물 정자 등 건물들이 있고 그 사이로 원(元)나라와 명(明)나라, 청나라(淸)나라 때의 통로들이 얼기설기 뻗어 있다. 

제왕의 무덤에서 보기 드물게 동쪽의 전욱무덤과 서쪽의 제각무덤이 나란히 한 이제릉은 회화나무의 숲에 둘러싸여 있어 그 속에 서면 마치 원시림 속에 들어 선 듯 자연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해마다 음력으로 3월 28일 전욱제의 생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제릉에 찾아와 제사를 지낸다. 이 때면 온갖 예술공연과 민간공예의 시연, 온갖 놀거리와 음식이 있는 묘회(廟會)가 펼쳐져 순박한 민풍과 풍부한 민속, 눈부신 황하문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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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안양시 일각)

키워드: 

역사인문, 고건물, 풍경

위치와 교통: 

안양은 하남(河南, Henan)성 북쪽에 위치, 베이징(北京)-광주(廣州) 철도가 경유해 베이징과 정주(鄭州), 낙양(洛陽), 무한(武漢), 서안(西安), 성도(成都), 곤명(昆明) 등 도시들에서 열차를 이용해 편리하게 오갈 수 있다. 

홍기거는 안양시 북서쪽에 위치, 열차로 안양에 도착한 다음 안양역에서 임주(林州, Linzhou)행 버스를 이용, 홍기거 청년동 명소까지 40km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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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홍기거)

계절: 

1년 4계절

설명: 

안양에서는 여러 문화재 명소를 본 다음 “사람의 힘으로 만든 하늘의 하천” 홍기거(紅旗渠)에서 아름다운 산과 물을 보고 자연과 함께 하는 인간의 힘을 느끼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홍기거는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1960년대 깎아지른 태항산(太行山) 허리의 절벽에 조성한 70km길이의 관개용 물길이다. 10년 만에 공사를 마친 홍기거는 1250개의 산을 깎고 151개의 공중 수로를 놓았으며 211개의 터널을 뚫고 여러 가지 축조물 12,408채를 지었다. 

홍기거를 건설하면서 판 토석으로 높이 2m, 너비 3m의 담을 쌓으면 중국 북방의 하얼빈(哈爾濱)에서 남부의 광주(廣州)를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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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홍기거의 일각)

1990년대에 홍기거를 기반으로 웅장하고 험준하며 기이하고 수려함을 자랑하는 홍기거 풍경구를 조성했으며 홍기거 풍경구는 분수원(分水苑)명소와 청년동(靑年洞), 낙사담(络絲潭)명소로 구성된다. 

분수원 명소는 홍기거의 물길이 세 갈래로 나뉘는 곳에 위치하고 녹음이 우거지고 정원이 아담하며 물이 세차게 흘러 비경이고 청년동 명소는 아찔한 절벽을 흐르는 물길이 웅장함과 험준함, 기이함, 수려함을 자랑한다. 

청년동에서 서쪽으로 1km 거리에 있는 낙사담명소에서는 물길이 벼랑을 날아 내리고 협곡의 물길 위에 놓인 다리, 아름다운 협곡의 경관, 신비한 거북이 동굴, 허공에 걸린 사슬 다리 등을 볼 수 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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