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19-05-08 10:12:28 출처:cri
편집:李仙玉

굉림조: 최대의 고대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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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굉림조)

개관: 

4 천 년의 유구한 문명 역사를 보유하고 복건(福建)의 젖줄이 흐르는 넓은 판동(坂東) 벌판에 위치한 굉림조(宏琳厝)는 중국에서 현재까지 보존된 고대 민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동쪽을 바라보는 굉림조는 장방형으로 반듯하며 중심선 상에 본채인 정조(正厝)가 세 겹으로 위치하고 본채마다 양쪽에 서로 마주 바라보는 횡조(橫厝)를 거느려 아늑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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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굉림조)

역사:

굉림조가 위치한 복건성 민청(闽淸)현은 당(唐)나라 때인 서기 785년에 현을 설립, 최초에는 매청(梅淸)현이라 했으며 911년의 후량(後梁) 때 민청현으로 개명했다. 

1795년 현지의 목재 상인 황작빈(黃作賓)과 그의 장남 황굉림(黃宏琳)이 공사를 시작해 28년 만인 1823년에 공사를 마쳤다. 2016년 굉림조는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뒤에 다시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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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멀리서 본 굉림조)

주요명소:

매계(梅溪)의 상류인 연계(演溪)가 이 곳에서 큰 굽이를 돌며 아름다움을 연출해 사람들은 그 곳을 “옥의 벨트”라고 하며 굉림조는 바로 그 옥의 벨트의 안쪽에 위치해 있다. 

강 건너에서 굉림조를 바라보면 다섯 줄의 산발이 가까운 데서부터 멀리까지 나란히 펼쳐져 “오중안(五重案)”이라 불리며 그 산 자락, 물가에 굉림조가 아담하니 자리하고 있다. 

앞쪽으로 옥의 벨트를 방불케 하는 맑은 강물을 마주하고 뒤에 높고 푸른 산발을 업은 굉림조는 고대 중국에서 최고의 풍수를 자랑하는 곳으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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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위에서 본 굉림조)

복건에서 지명으로 많이 사용하는 조(厝)는 집이나 건물을 말한다. 따라서 굉림조(宏琳厝)는 광림네 집, 정조(正厝)는 본채, 횡조(橫厝)는 가로 세운 건물을 의미한다. 

2만 제곱미터에 가까운 부지를 자랑하는 굉림조는 나란히 줄지은 세 채의 정조(正厝)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 가로 두 갈래의 길과 세로 두 갈래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크고 작은 방화벽 36장과 크고 작은 홀 35개, 주변에 건물이 둘러선 마당을 말하는 중정이 30개, 화원이 25개, 방 666개를 거느린 굉림조에는 100 여 가구에 900 여 명의 주거가 가능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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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굉림조의 건물)

중심선을 기준으로 양쪽의 건물들이 대칭을 이루는 굉림조에는 복도와 통로가 꼬불꼬불하나 질서 있게 펼쳐져 교통이 원활하며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건물은 주거에 적합하다. 

거기에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구조와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을 보유한 굉림조는 1차 설계로 1차 시공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축조하는데 28년이 소요되었다. 

굉림조는 설계와 건설에서 건물의 방어능력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가옥은 밖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몇 겹으로 된 두터운 문과 감시용 공간, 발포 공간 등을 둔 굉림조는 공격에 어렵고 수비에 용이한 성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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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굉림조의 방화벽)

굉림조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키 높은 외벽을 말하는 봉화벽(封火壁)과 건물들 사이로 얼기설기 흐르는 물길을 방화 시설로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건물의 기둥은 모두 돌 위에 세워져 부패를 방지하기도 한다. 

굉림조의 봉화벽은 목조 건물의 구조에 따라 미끈한 라인을 자랑하고 건듯 들린 봉화벽의 귀퉁이가 건물 밖으로 나가 말 안장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마안장(馬鞍墻)이라고도 한다. 

굉림조의 호두문 앞 한쪽에는 거리가 나 있고 다른 한쪽에는 키 낮은 담이 있으며 거리와 담은 석조 난간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담의 양쪽에는 화표(華表)가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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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굉림조의 통로)

굉림조의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는 농(弄)이라고 부르며 집에 들어갈 때는 마당을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고 나올 때도 들어갈 때 사용했던 통로를 사용한다. 

안채와 봉화벽 사이의 통로는 화재가 발생할 경우 화재 진압을 위한 통로와 가족들이 건물을 탈출하기 위해 사용하는 통로이다. 이 통로는 도적들이 공격할 경우 가문의 남자들이 싸우기 전에 머무는 곳으로도 사용된다. 

굉림조의 첫 번째 마당과 두 번째 마당 사이, 두 번째와 세 번째 마당 사이에 축조된 건물은 과우정(過雨亭)이라 한다. 과우정은 가족들이 쉬어가는 장소인 동시에 화재 발생시 무너뜨려 불길의 만연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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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굉림조의 건물)

굉림조는 건물의 구조도 아주 엄밀하다. 첫 번째 문이 호두문(虎頭門)이고 그 뒤에 병문(屛門)이 있으며 병문의 뒤에 마당과 사면의 복도, 본채가 위치하며 복도의 바깥쪽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두 번째 마당에 들어서면 오른쪽과 왼쪽에 서원(書院)이 자리하고 정면에 본채가 있으며 첫 번째 마당과 두 번째 마당 사이에는 가로 된 거리가 조성되어 두 마당이 각자 독립된 공간을 유지한다. 

세 번째 마당의 구조도 첫 번째 및 두 번째와 일치하나 마당이 더 크고 넓으며 건물도 더 높고 밝으며 장식도 더 화려하다. 굉림조의 세 마당 정면에 자리잡은 세 개의 본채는 모두 방 다섯 칸 너비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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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굉림조의 문)

굉림조의 창문은 상대적으로 높게 설계되어 실내의 프라이버시를 잘 보호하며 상하 혹은 좌우로 된 여닫이 문으로 되어 최소의 공간으로 생활에 최대의 편리를 제공한다. 

굉림조의 건물은 토목 구조이고 목조로 된 모든 건물의 대들보와 기둥, 창틀에는 정교한 기법의 조각과 그림이 즐비해 건물에 역사와 문화적 함의를 가미한다. 

굉림조의 첫 번째 마당에는 가문의 가장 작은 항렬이 살고 두 번째에는 그 보다 높은 항렬, 그리고 가장 뒤에 위치한 세 번째 마당에 가문의 어른들이 살며 중화민족의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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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굉림조의 편액들)

키워드: 

민가

위치와 교통: 

굉림조는 복건(福建, Fujian)성 민청(闽淸, Minqing)현, 판동(坂東, Bandong)진 신호(新壺, Xinhu)촌에 위치, 복건성 성도 복주(福州, Fuzhou)에서 50km 거리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복주에 도착한 다음 복주에서 굉림조행 버스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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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아름다운 사락헌)

계절: 

1년 4계절

설명: 

굉림조가 위치한 민청현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다. 

사락헌(四樂軒): 

청나라 때인 1754년에 축조한 사락헌도 굉림조와 같은 대 규모의 민가이다. 네 겹의 마당에 네 채의 안채가 있고 주변에 크고 작은 건물과 좁고 넓은 통로들을 거느려 웅장하다. 

이름이 자자한 선비 가문의 주택이었던 사락헌에는 학문을 중시한 분위기가 짙고 건물마다 온갖 편액들이 걸려 있어 사락헌에 사는 사람들은 “편액하의 자손”이라 불린다. 

황저림(黃楮林) 온천: 

복주에서 90km 거리에 위치한 황저림 온천명소는 “중국 온천의 제일계(第一溪)”라 불린다. 현재 많은 옥외 온천과 호텔, 레스토랑 등 시설이 잘 갖추어진 이 곳에서는 즐겁고 편안한 휴식의 한 때를 보낼 수 있다. 

원초적인 자연 식생과 울창한 숲을 보유한 이 곳에는 또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아름다운 산봉과 아늑한 계곡, 쏟아지는 폭포와 맑은 시냇물이 비경을 이루며 언제나 공기가 맑고 여름에도 무더위가 없이 시원하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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